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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도개요
     
  갱정유도를 창립한 강대성(姜大成, 號 迎新堂)은 1890년(단기 4223,경인) 9월 17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 봉곡리에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부친에게 글을 배웠으며, 9살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예의범절이 뚜렷하고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은 시비곡절을 가려 주기를 즐겨 했다. 17세에 성혼을 했으나 해로하지 못하였다.
20여세가 지나면서부터 그의 마음은 더욱 호대하여져 만사에 뜻이 없고 천리(天理) 궁구(窮究)에만 몰두했다. 29세때 문씨 부인을 맞아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이 용학(龍鶴)이었다.
30세가 되던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투쟁에 참가했다가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수도(修道)를 하고 구국(救國)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1922년 고향을 떠나 정읍군 산내면 진삼동으로 이사하여 부인 아들과 3인이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때가 바쁘니 어서 화개산(花開山)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계를 받는다. 그러나 화개산을 알 수 없어 순창군 쌍치면 묵산리 처가 동네로 가서 천신에게 기도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1924년이 지나면서부터 심신이 맑아지고 심령이 열려 인간의 길흉과 지리(地理)까지 아는 경지에 이르고 음부경(陰符經)을 얻어 몇 번 읽어 보니 그 뜻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어떤 글을 대하든지 뜻을 알 수 있었다. 1928년 기도중에 ‘금강산 금강암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명령을 듣고 회문산중 승강산 골짜기에 금강암 이라는 옛 절터에 삼간 모옥을 짓고 부부자 3인(夫婦子三人)이 본격적인 정진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인과 10세 된 아들 용학(龍鶴)에게도 수도하는 묘방과 정성선심(正誠善心)하는 방법을 일일이 일러주고 그것을 써서 문위에 붙여 명심케 하였다.
이어 그는 “이 집은 유불선(儒佛仙) 3도를 겸하였으니 천지인 삼재로 보면 하늘이 선(仙)이고, 땅이 불(佛)이고, 사람이 유(儒)며, 인간 부부자 삼인으로 보면 아버지는 선이고, 어머니는 불이며, 아들은 유라”고 말한 다음 각각 방 하나씩을 맡아 수도에 정진했다.
그리하여 유도방(儒道房)에는 아들 용학이 들어가 유도법을 행하라하고, 불도방(佛道房)에는 부인(婦人)이 들어가 칠성전(七星前)에 정화수(井華水)를 바치고 불법행을 하라 하고, 선도방(仙道房)에는 옥황상제위를 모시고 대성 자신이 들어가 선법으로 포일수중(抱一守中)하고 환정채기(還精採氣)하여 신수화지 재생법(神水華池 再生法)을 마련할 수도를 시작했다. 또 자신의 선도방에는 하도낙서법(河圖洛書法)과 우(禹) 임금의 구보법(九步法)과 칠성보를 걸어놓았다.
이와 같이 부부자 삼인이 유불선을 상징하는 방 하나씩을 맡아 삼교의 특징적인 수련법으로 정진수도를 시작한 것이다.
다니는 길에는 돌을 깔아 그 위로 다니게 하고 집 마당에는 금줄을 쳐서 외인의 출입을 금지하였으며 귀막고 눈막고 음식마저 전폐하며 정진을 계속했다.
이렇게 수도하던 그는 1929년 7월 어느 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이상한 행동을 하고난 다음 며칠 뒤부터 전과는 다르게 혼자 앉아 많은 글을 읊는데 명산대천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고금성인의 명호를 부르기도 하며 “천하악독(天下惡毒) 독벌(毒伐)하자. 가두어라. 죽여라. 쫓아내라. 벼락쳐라. 불칼 써라. 대국이 왔느냐 서양이 왔느냐. 일본이 왔느냐”하기도 하고 또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는가 하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시조도 읊고 장단도 치며 염불도 하고 각국 언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 “내가 요순이다. 석가여래다.
칠성이다. 상제다. 내가 고금성인이다. 산신이다. 금불이다. 내가 야소다. 수운이다. 증산이다.” 하기도 했다.
그는 또 “선심자에 복을 주고 인간해원 다 시키고 창생병독 다 없애며 삼재팔난 다 없애련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오랜 구도생활 끝에 도달한 도통의 경지를 이렇게 말과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도를 이룬 영신당은 그후 하늘에 올라가 상제로부터 광제창생하라는 대임(大任)을 받고 지상에 내려왔다고 하며 부부자 3인이 세상을 구원할 막중한 책임 때문에 3일을 울어 흘린 눈물을 나누어 마시는 누건수교리(淚巾水敎理)와 부부자 3인이 영혼을 서로 바꾸는 생사교역(生死交易)을 치르게 된다.
그 후 여광여취(如狂如醉)로 남원, 하동, 구례, 곡성, 담양, 함양, 거창, 임실, 태인 등을 돌아다니며 “일청전쟁 붙인다” “세계대전 붙인다” “천하대세를 조선으로 돌린다”고 하였다.
1931년 겨울이 되어 8월에 입었던 여름 홑옷을 그때까지 입고 다녀 해어져 남루한 모습이었지만 조금도 추운 기색이 없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신인이라고 놀라기도 했다.
길가에서 ‘음부’(陰符)하고 큰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어떻게 크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 놀라기도 하였다.
운봉에 가서는 몇 달 동안 중풍으로 앓고 있는 사람을 약 몇 첩으로 완치시켜 주기도 하고 남원에서는 어떤 사람의 9년된 구와병(口蝸病)을 치료해 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가는 곳마다 기이한 행적과 비범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순창 남원 사이가 온 천하(淳南之間이 天下之間)라고 보고 이 주변으로 돌아다니면서 백초약(百草藥 세상인심 탐지)을 맛보았다.
다른 여러 곳도 돌아다니며 세상인심 다 살피고 선악구별 다하여 악자를 멸하고 선자를 살릴 수 있는 묘방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후 그는 박경준(朴坰準)을 비롯한 7인 제자와 함께 진안군에 있는 운장산(雲藏山)에 들어가 5년간을 머물면서 백일공사(百日公事) 등 여러 가지 공사를 벌이는 반면 기본 경전인 해인경(海印經)을 내놓게 된다.
1942년 운장산에서 나온 그는 회문산 도령동으로 옮겨가 최초의 성당을 짓고 28자로 된 교명간판(時運氣化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을 세우는 한편 복희 하도 선천의 도기(道旗)를 제작하여 게양하고 태극기건립강선가(太極旗建立降仙歌)를 불렀다.
또한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예언을 했는데 특히 “청계울음 웅게(雄鷄)되니 月七八何其年고 七七八前三이라”는 말을 하여 음력 七月七夕 양력 八月十五日에 해방될 것을 미리 알리기도 했다.
해방후 1946년부터는 그간 기록해 둔 일부를 필사하여 가르쳤다.
그가 해방을 예언한 것이 적중하였고 해인경을 읽으면 삼재팔란과 난세를 면한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신자가 5·6십만명에 달했다.
6·25 얼마 전에는 전쟁이 일어날 것을 “북적 북적 끓는 물 제주는 떴다마는 남적을 어이할고”라고 예언하였다. 6·25후 본부 성당을 남원읍 천거리로 옮겼다가 1951년 2월 김제군 광활면 학당리로 옮겨 갱정유도 간판을 다시 세우고 도기(道旗)를 게양하여 본격적인 행도체제를 갖추었다.
道祖는 5월부터 제자들을 시켜 각국 대통령 각국 대사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면담하지 못했다.
이때 해인경과 누건수교리를 영역하여 미국 대통령과 상하의원 의장 및 유엔사무총장에게 발송하였다.
1954년 3월에는 제자 5인을 상경시켜 “세계평화하실 만고무비지대성인(萬古無比之大聖人)이 한국에 출세하시었다”는 소식을 자유당 정부에 전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1개월씩 구류를 살았다.
이어 동년 5월에는 제자 15인을 상경시켜 아시아 반공대회장에서 동일한 내용의 소식을 전하려다 국가위신 손상죄로 몰려 또 1개월씩 구류를 살았다.
1954년 6월 1일 사건이 일어나기 5일전 도조는 곧 닥치게 될 일들을 미리 예견하고 무수한 걱정을 하였다.
이를 본 제자들이 “그러시면 선생님께서 잠깐 피하시죠.”라고 권하자, 그는 “내가 당하고 말지, 내가 없으면 자네들이 못 당할 것이네.”라고 하였다.
사건 당일 제자들에게 큰 공사가 있으니 조반을 일찍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조반을 서둘러 끝마치는데 전북 경찰국으로부터 50여명의 무장경찰이 들이닥쳤다.
50여명의 무장경찰은 불문곡직하고 道祖를 비롯한 원로간부들을 마당에 꿇어앉히고 몽둥이와 철봉으로 구타하는 것이었다.
道祖의 전신에 피가 낭자하고 빈사상태가 되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60여명의 신자들이 참을 수가 없어 경찰들에 대항하자 경찰은 공포를 쏘며 이들을 모두 경찰국으로 연행해 갔다.
도인 57명은 그 후 10여일 만에 석방되었지만 道祖와 사지례장(四智禮長) 등 5명이 구속되었다. 道祖는 체포당시 심한 구타를 당했기 때문에 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전주도립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3개월만인 1954년 8월 16일 선화하였다.
道祖가 저술한 경전에 “나는 또한 농부 민열 욕심길이 아니기로 사양하고 갈터이니 승피백운 알지어다” 하였는데 사건 당일인 6월 1일 후로 매월 7일, 17일, 27일 자정이면 하늘에 상여가 떠서 가는데 여상주 삼인과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르는 기이한 형상을 보이는 기적을 남겼다.
그해 10월에 사지례장(四智禮長)은 석방되었으나 재판은 계속되었는데 56년 5월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대화중흥국(大和中興國)사건이라 한다.
 
 
     
 ▶ 회참여운동
     
  도조선화 후 김갑조(金甲祚)가 도맥을 이었는데 그는 1933년 3월 28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 연파리에서 태어나 17세에 갱정유도에 입도하여 수도하였다. 1954년 도조 선화 후 제자들이 지리산 등 사방산중으로 입산하게 되었다.
이때 김갑조도 입산하여 수차례의 15일 수련과 백운산에서 백일 특별수련을 한 끝에 1958년 3월에 도통을 이루게 되었다.
그 역시 여광여취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기적과 비범한 행동으로 道祖 영신당의 도맥을 이어 포덕, 교화, 인재양성의 사업에 정진하여 도세를 부흥하였다. 그리하여 선화 후 계도선사(繼道先師)로 추대되었다.
그는 1961년 지리산 노고단에서 수많은 제자를 모아 강륜보감(綱倫寶鑑) 강학과 수련을 시켰는가 하면 지방포덕에 전력하였다.
62년에는 도조의 딸과 결혼하였고, 64년 겨울부터 그는 갱정유도 사상의 보급과 포덕을 위하여 도인들로 하여금 짝(應星)을 지어 전국 각지에 파견, 유림 관계 인사들을 비롯한 은사, 저명인사들을 심방하여 해인경을 비롯한 누건수교리 등을 배포하였다.
1965년부터는 5개항의 주장을 초안하여 대규모 서울 포덕계획을 진행시켰다. 그리하여 그해 6월 6일 전국각지에 분산되었던 도인들은 일제히 서울에 결집하여 서울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경찰이 깜짝 놀란 것은 이 전단에 용공적 표현이 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긴급 출동한 경찰이 유인물을 압수하며 이들을 연행했다.
도인들이 흥분하여 일제히 중앙청을 향해 ‘단군창업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몰려들었다. 경찰은 도인들을 모두 체포하여 각서에 분산 수감하였다.
원래 그는 ①‘원미소용(遠美蘇慂)하고 화남북민(和南北民)하자.’(미소의 종용을 멀리하고 남북민이 화하자) ②‘민족도의(民族道義)라야 통일독립(統一獨立)된다.’③‘양이적풍(攘夷狄風)해야 화민양속(化民良俗)한다.’④‘통만국회(通萬國會)하야 보호험약(保護險弱)하자.’⑤‘충효간성(忠孝干城)으로 세계화평(世界和平)하자.’등 ‘5대 항목’의 글을 준비하였으나, “④항과 ⑤항은 차후에 반포할 때가 있을 것” 이라면서 ①~③항의 3대 항목만 반포하게 되었다. 특히 ②항은 글의 후반부를 “삼팔선(三八線)을 피벽(披闢)하고 우리 것을 찾는다”라는 별도의 제목으로 독립시켜 반포하였다.
유인물 내용과 체포한 도인들을 모두 조사한 결과 별다른 혐의가 없고 동기가 순수 했으므로 주동자 김창석(金昶錫), 한양원(韓陽元), 오세묵(吳世默) 등 5명만 ‘반공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는 다음날 모두 귀가 조치하였다.
구속된 사람들은 그 뒤 남원 경찰서에 이관되어 그해 8월에 모두 석방되었다.
이처럼 갱정유도는 개인의 수도활동이나 사회참여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 특징이 된다. 교조 재세시의 ‘대화중흥국사건’이며, 50년 사인(四人)이 대통령에게 남북통일방안 전달사건, 65년 ‘서울시위사건’과 같은 활동도 있으며, 84년 ‘남북통일·세계평화 기원대제’라든가 85년 ‘도의앙양실천대회’ 등이 그렇고 교단의 한양원 도정이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일하는 활동들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도 특히 1984년 3월 20일 파주 임진각에서 본도의 전통적 의식절차에 따라 봉행한 ‘남북통일·세계평화 기원대제’는 세상을 경이롭게 하였으니 장소도 휴전선에 가까운 임진각이려니와 우리사회에서는 최초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차원 높은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1985년 3월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갱정유도가 주관하고 단군숭봉전국협의회, 독립유공자협회, 민족종단협의회가 후원하여 열린 도의앙양실천대회(강연회)도 현대사회에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 신앙의대상
     
  신앙의 대상은 선당궁(仙堂宮)이니 24절후가 표시된 원형의 천문도(天文圖)에 ‘선당궁’이라는 글자를 중앙 상단에 쓰고 그 아래 좌우에 동서(東西) 음양(陰陽)의 표시로 전(錢)자와 곡(穀)자를 쓰고 또 그 아래에 하재불멸(何災不滅) 하복부진(何福不臻)이라 써서 동향으로 모신다.
그리고 선당궁 옆에는 도조 영신당(迎新堂)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만민해원경(萬民解寃經)에 선당궁의 의미를 ‘선’은 늙지 않고 길이 사는 조화 난측의 원기(元氣)니 그 묘용을 얻는 자는 수명(壽命)이 한량없게 된다는 뜻이며 ‘당’이란 성현의 위패나 상을 봉존하고 제사, 기도 하는 곳이기에 이곳에 성현의 신명이 내려 집합하고 있으며, 그 심법을 닦고자하는 자가 이 곳에서 체도명덕(體道明德)한다.
‘궁’이란 임금과 신하가 상통하여 정사를 하는 곳이니 명현의 신령을 내리게 하여 그 경륜을 맡는 자가 세계와 백성을 광구할 수 있게 된다.
만선(萬仙)의 도회처로써 제성(諸聖) 제불(諸佛) 제선(諸仙) 충효열(忠孝烈)의 일기(一氣)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치성을 올리는 자는 그 기운을 받아 신인합발(神人合發)의 능력을 얻게 된다.
선당궁은 성스러운 법소니 지방에는 성당에 봉안 하든지, 도인들의 사가에는 깨끗한 방 동쪽에 모신다.
 
     
 ▶ 도리강령
     
  도리강령은「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유도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유불선(儒佛仙)과 동서학(東西學)을 합일하여 새로운 유도(儒道)의 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仙)의 조화(造化)·불(佛)의 형체(形體)·유(儒)의 범절(凡節)을 기본으로 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간 본성을 수양하고, 인간윤리를 실현한 정신문명과 모든 부조리를 제거한 정수한 현대문화를 조화하여 다시 새로운 진전을 함으로써 개인의 완전한 인격완성에서부터 온 인류의 완전한 평화를 이루는, 즉 천상일기(天上一氣:諸聖·諸佛·諸仙·忠孝烈道德善心)를 인간에 해원(解寃:神人合發)시켜 지상천국을 건설하자는 도리(道理)인 것이다.
 
     
 ▶ 강령
     
  강령은 자강불식(自强不息) 창도진전(創道進展) 광대포용(廣大包容)이며, 종지는 포덕사업(布德事業) 교화사업(敎化事業) 경제사업(經濟事業) 등이다.  
     
 ▶ 교리사상
     
  본 도의 교리 사상을 구체적으로 논하면 누건수교리, 생사교역, 해인경사상, 미래관으로 나눌 수 있다.
 
     
 ▶ 누건수교리(淚巾水敎理)
     
  1929년 7월, 도통한 영신당은 7일간을 하늘에 올라가 하늘나라를 다 살피고 내려왔다. 이때 그는 상제로부터 천지가 지천되었다가 다시 천지되는 대법정도와 노천노지(老天老地)를 신천신지(新天新地)로 변역시켜 부부자 삼인이 광제창생하라는 대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천지공사의 대임을 받고 지상에 내려온 그는 부부자 삼인이 이 책임을 분담하게 된다.
부(夫)는 천황씨(天皇氏)로서 천상일기(제선 제불 제성 충효열)를 인간에 해원(신인합발)시킬 책임을 맡고, 부(婦)는 지황씨(地皇氏)로 인간 죄악을 천상으로 보내 없애 버리고 인간 세상에는 죄악이 없도록 하는 일을 맡고, 자(子)는 인황씨(人皇氏)로 인수기별(人需寄別 : 유도소식)을 붙여 만민을 해원시킬 책임을 맡게 된다.
영신당이 맡은 일은 우리 인간이 지나온 후천(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선천과 같음) 음도세상(陰道;지천시대)은 천상에 모든 선이 모이고 지상에 모든 악이 모여 있던 세상이었다.
그래서 성인들이 출현하여 천상으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선천(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후천과 같음) 양도세상(陽道;천지시대)은 천상의 신령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지상에 있던 모든 악이 다 천상으로 올라가 없어지게 되는 변역천지가 되는 때이므로 천상일기를 인간에 하강시켜 해원시킬 책임을 맡은 것이다.
부인(지황씨)이 맡은 일은 영신당이 천상에 있는 일기를 인간에게 해원시키게 하려면 인간세계(人間世界)에 쌓여 있는 모든 죄악을 먼저 없애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만인의 어머니이신 지황씨가 모든 죄악을 맡아 죽을 것을 책임진 것이다.
아들이 맡은 일은 천황씨가 일기를 해원시킬 조화의 도를 맞추고 지황씨가 인간죄악을 맡아 없앤 후, 일기를 지선지성(至善至誠)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해원시킬 인황씨의 책임을 맡은 것이다.
부부자 삼인이 이와 같이 천지의 대공사를 책임지고 천상일기를 살리고 인간죄악을 없애자니 살리고 죽이고 죽이고 살리는 생사교역이 없고는 될 수가 없었다.
영신당은 천심으로는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 인심으로는 그지없이 슬퍼 통곡자탄 슬피 우니 부인도 슬피 울고 아들도 따라서 슬피 울었다.
이렇게 셋이서 서로 붙들고 ‘천지간에 몹쓸 내가 수도한 게 죄가 되어 이러한가’ 탄식하며 울었다.
세 사람이 울고 또 울어 눈물수건을 짜서 각각 한 그릇씩 서로 나눠 마시고 또 눈물수건을 짜서 또 나눠 마시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누건수교리이다.
세상을 구원할 대임을 지고 부부자 삼인이 서로 생사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울고 울었다는 내용이다.
 
 
     
 ▶ 생사교역(生死交易)
     
  위에서 밝힌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 삼인이 책임 맡은 이 생사교역이 없이는 만민해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천황씨(영신당)가 천상일기(天上一氣)를 인간에 해원시키자니 지황씨(부인)와 생사교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1930년 5월 4일 영신당의 부인이 송백목하(松柏木下)에 결항이사(結項而死)하였다. 이 같은 부인의 죽음이 진리면에서 보면 바로 생사교역이었다.
영신당의 육체는 살아있으나 영혼은 천상일기를 통솔하여 부인의 뱃속에서 죽고 부인의 육체는 죽었으나 영혼은 영신당 몸에서 살아 생체(生體)가 사체(死體)되고 사체는 생체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영신당의 영혼은 부인의 죽은 몸을 지키고 부인 영혼이 영신당의 산 몸속에 들어간 것은 변역천지(變易天地)하여 천지가 지천되었다가 다시 천지되는 천지운도의 대법정도를 맞춘 것이다.
그리하여 영신당은 죽은 부인의 사체를 지키며 후일 일기재생 만민해원되는 날 화생하려고 천상으로 가고, 부인 영혼은 영신당 몸을 지키며 살아나 백초약(인간 인심 탐지)을 맛보며 여광여취(如狂如醉)로 주유천하(周流天下)하여 해인약(세상 구원방법)을 마련하였다.
 
 
     
 ▶ 해인경사상(海印經思想)
     
  해인경은 “상제님이 내리신 경(經), 억조창생 살리라고 새 기운 받아 살라”는 경이다. 신천신지(新天新地)가 되면 사람도 새 사람으로 바뀌어야 되기 때문에 그간 잘못된 인심을 순환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약방문이 바로 해인경인 것이다.
사상과 이념이 모두 이 경에 포함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각종 의례행사 때는 물론이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계속 독송되고 있다. 또한 일종의 주력(呪力)까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믿어져 대단히 신성시한다.
이 경은 상제님이 억조창생을 살리려고 내린 경이기 때문에 동서양의 모든 사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다 이 경을 알고 지성하면 잘 살게 된다.
해인경의 원문은 ‘우성재야(牛性在野) 천지부모(天地父母) 궁을합덕(弓乙合德) 음시감혜(음時感惠) 일심동력(一心同力) 세계소립(世界所立) 오주소립(吾主所立)’ 이라는 28자의 짧은 글로 되어 있다.
 
     
 ▶ 유불선이 합일한 봄시절(미래관)
     
  우리가 살고 있는 44세기(단기 4321년)는 큰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다. 우리 인간은 주야 사시 천지운수 가운데서 살고 있다.
주야 1일은 12시간 만에 바뀌고, 사시는 1년이니 365일만에 바뀌고, 천지운수는 대도운수라 4320년 만에 크게 한번 바뀐다. 1일이 주야로 순환하고 1년이 사시로 순환하는 반면에 천지대도운수는 천지 조화 음양의 이치로 순환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그 운수가 1일에 비유하면 낮이 밤이 되었다가 다시 밤이 낮이 되는 때요, 1년에 비유하면 봄과 여름을 거쳐 가을과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되는 때요, 천지대도운수는 양도(陽道)가 음도(陰道) 되었다가 다시 음도가 양도 되는 때다.
이 양도 춘하시절에는 천당에 가 있던 제성·제불·제선·충효열·도덕선심들이 모두 지상에 내려오게 되는 유도세계(儒道世界)다.
천지대도의 운수를 따라 이와 같이 앞으로 돌아오는 세상은 천상일기가 지상에 내려오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살기 좋고 화평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고 만국평화가 이루어지며 43세기의 서양 과학문명의 폐단은 모두 사라지고 44세기의 동양 정신도덕문명이 극도로 발달되어 지상천국과 지상극락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장차 만국의 사제국(스승의 나라)이 될 것이며 세계의 제일국, 세계의 중원국, 세계의 부모국이 된다. 장차 우리말이 세계의 언어가 되고 우리 전통의 문화가 세계의 문화가 된다고 한다.
경전에 부응경(符應經)이 있다. 이 경은 도조 영신당이 천어문답(天語問答)한 것을 직접 기록한 내용들이다. 1946년경부터 그중 일부를 인쇄해 보급했으나 왜정(倭政) 당시 금지되었고, 그래서 비장한 천서를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묻었다가 해방 후 발굴한 바, 습기로 인하여 원고가 부식되어 거의 손실되었다.
지금 전하는 부응경은 일부 인쇄된 것과 땅에 묻었던 것 중 남은 것을 한 데 모은 것이다.
1980년에 임의 발간된 경전과 남아있는 원고를 수집하여 한데 모아 900여 면을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 펴냈다.
도조의 원문을 살리기 위해 현행 한글맞춤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기록 당시의 문체를 그대로 발행했다.
내용은 국한문 혼용이나 한자숙어가 대부분이고 글 자체가 심오한 진리적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데다가 전라도 방언이 많다. 89년에 창도 60주년 기념으로 갱정유도 개설을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