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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진경에 나오는 인물 중심의 중국역사


- 진경에 나오는 인물 중심으로 중국의 역사를 간추려 보았다.-


세상을 만들었다는 반고(盤古)와 사람을 만들었다는 여와(女蝸)의 전설로 시작하여 BC 3000년경 삼황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


• 三皇(삼황)

수인씨(燧人氏) - 추위에서 보호하고, 불을 발명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인류에 가                   르쳐 주었다.

복희씨(伏羲氏) - 팔괘를 만들고 노끈으로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신농씨(神農氏) - 농기구 발명, 농사짓는 법과 여러 종류의 풀을 맛본 후 병을 치료 할 수 있는 약초를 가르쳐 주었다.


무극1:6 상제님 인신(人身)의 시조는 중국의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휘 궤(軌)이시라 하며, 중시조는 고구려의 병마도원수 휘 이식(以式)이시고...


무극9:121 또 “신농씨가 경농(耕農)과 의약을 가르침으로부터 천하가 그 두터운 혜택을 입어 왔으나 그 공덕을 앙모(仰慕)하여 보답하지 않고,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의 묘략(妙略)을 전수함으로부터 천하가 그 덕을 입어왔으나 그 공덕을 앙모하여 보답하지 아니하니 어찌 도의에 합당하리요?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과 태공의 은혜를 보답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五帝(오제)

黃帝 - 헌원(軒轅) : 최초의 皇帝

성은 공손.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신농씨 자손들의 덕이 쇠퇴하여 제후들 사이에 서로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황제는 염제(炎帝)와 연합하여 ‘탁록의 들판’에서 치우를 물리치고 다시 염제와 싸워 승리하여 부락연맹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에 제후들 모두가 헌원(軒轅)씨를 천자로 삼았으며, 그가 곧 황제이다.

쉬지 않고 산림을 개척하고 도로를 뚫었으며, 탁록산 아래 임시로 도읍을 정하고 일정한 거처를 만들지는 않았다.

황제가 통치하는 시기에 양장을 비롯하여 의복, 궁실, 배, 수레, 10간(干) 12지(支)를 맞춘 천문서적, 문자들이 만들어져 큰 발전을 이루었다.

※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 부르며, 황금색 도포를 입고 황금색 기와로 된 궁전에 사는 황제를 토덕(土德)의 천자(天子)라 한다.


태극1:7 상제님 인신 선조의 연원은 중국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라 하며 28대조 휘 정(鼎), 시호 충장(忠壯)은 고려 개국벽상공신 대장군 원윤(元尹)이시며...


무극2:41 “치우(蚩尤)가 작란(作亂)하여 큰 안개를 지으므로 황제(黃帝)가 지남거(指南車)로써 평정하였느니 작란자도 조화요, 정란자(靖亂者)도 조화니라. 제우는 동세(動世)를 맡았으나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느니, 전명숙(全明淑)의 동은 곧 천하의 난을 동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태극9:41 “시속에 군부(君父)의 상(喪)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하고, 모상(母喪)을 지붕지통(地崩之痛)이라 하며, 처상(妻喪)을 고분지통(鼓盆之痛)이라 하나, 천자(天子)의 상은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가 칼을 내주고 떠난 후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여 분검지통(分劒之痛)이라 하느니라.” 하시니라.


현호, 소호씨 - 황제의 아들이다.


전욱, 고양씨 - 황제의 손자(현효의 동생인 창의의 아들)이며,

               백성을 교화시키고, 제사를 행하였다.


제곡, 고신씨 - 현효의 손자(전욱의 아들)이며,

               해와 달의 운행을 헤아려 역서를 만들었다.


방훈, 제요도당씨, 요(堯)임금 - 제곡의 아들, 당(唐)을 세움(B.C 2333~2234)

                                 역법을 제정. 1년 =12개월=366日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이동에 따른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밝혀 농사절기를 사용.

                              관리임명 : 역법을 관장하는 관리, 치수를 관장하는 관리 (이때 황하유역 중심으로 홍수의 범람에 따른 막대한 피해가 발생함  으로 치수 사업이 국가의 가장 큰 사업                                           이였음)

※ 요임금의 대를 이을 사람으로 장자인 단주를 추천하였으나, 단주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고 하여 거절(단주가 천하를 다스리면 한 사람, 즉 단주만 즐겁고 온 천하가 괴로워 할 것 이라고 생각함)하고 순임금에게 선양(禪讓:능력 있고 덕망 있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하였다.


무극2:25 “무릇 강령(綱領)을 들면 조리(條理)가 펴임과 같이 인륜기록(人倫記錄)의 시초이며 원의 역사의 원초(原初)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이후 수 천년간 쌓여온 모든 원의 결절(結節)이 풀릴지니라. 대저 당요가 단주를 불초(不肖)히 여겨 아황(娥皇),여영(女英)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출가시키고 천하를 양여(讓與)하니, 단주는 깊이 원을 품어 그 울분(鬱憤)의 충동으로 마침내 우순이 창오(蒼梧)에서 붕(崩)하고, 두 왕비가 소상(瀟湘)에 빠지는 참사(慘事)를 이루었느니라.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고 시대의 추이(推移)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더욱 증가하더니, 드디어 천지에 충색(充塞)하여 세상을 훼파(毁破)함에 이르렀으므로 단주해원을 위수(爲首)로 하느니라. 또 천하를 청징(淸澄)하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을 멸하는 참화(慘禍)를 당하고 의탁할 곳이 없어, 철천(徹天)의 한을 머금은 채 중천(中天)에 떠도는 만고역신(萬古逆神)의 해원(解冤)을 위차(爲次)로 하여 각기 원앙(冤殃)과 억울(抑鬱)을 풀고, 행위를 심리하여 곡해(曲解)를 바르게 하거나, 의탁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건설(仙境建設)의 첫걸음이니라.”하시니라.


태극3:15 삭망도수공부 중 9월 19일 구천상제님 강세일에 대 치성을 올리신 다음, 임원들을 공부실에 시좌시키고 하교하시기를 “나의 도통은 요순(堯舜)의 상수지법(相授之法)과 같으니라.” 하시며 기쁜 얼굴로 다음의 한시(漢詩) 한 수를 읊어 주시니라.

時時默誦空山裏   夜夜閑聽潛室中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

시시묵송공산리   야야한청잠실중   분명조화성공일   요순우왕일체동

(때때로 빈 산속에서 묵묵히 외우고 밤마다 잠긴 방 가운데서 한가로이 들으니

분명한 조화가 성공하는 날에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이 모두 일체로서 같도다.)


• 중화, 제순유우씨, 순(舜)임금 (B.C 2333~2184)   

순(舜)은 기주 출신으로 농업, 어업, 질그릇 굽기, 가구 만들기 등을 하며 살았다.

순의 아버지(고수)는 장님이었는데, 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후처를 맞아 상(象)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상은 거만하고 오만방자 하였지만 아버지는 상만을 편애하였고, 순은 현명하게 행동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였다.

아버지는 상과 도모하여 순을 없애 버리려고 기회만 엿보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순에게 창고위에 올라가 토벽을 바르도록 하였다.

순이 창고위에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고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순은 미리알고 두개의 삿갓을 옆구리에 끼고 뛰어내려 무사히 목숨을 구하였다.

또 순에게 우물을 파도록 하였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계책을 눈치 챈 순은 우물을 파면서 옆으로 빠져나올 구멍을 하나 더 팠다.

순이 깊이 파내려가자 아버지는 상과 힘을 합하여 위에서 흙을 부어 우물을 메워 버렸다. 순은 옆에 파놓은 구멍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은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아우에게 우애를 다하였다.

순은 마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던 요임금에 천거되었다.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일정기간동안 그 품성과 재능을 관찰하고 시험하였다.

순의 정신력과 지혜를 살펴보기 위해, 험한 날 숲 속에 들어가게 하여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시험 하였으며나, 심한 바람과 우뢰와 비에도 길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잘 대응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 직무를 맡겨 그 능력을 시험(행정능력과 외교수완)하였다.

10년 동안 시험하여 모든 방면에서 기대에 부응 했지만 순(舜)은 스스로 덕이 모자란다고 겸양(謙讓)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에 보면 순 임금은 20살에 효도로서 빛났고 30살에 요임금에 등용 되었으며, 쉰 살에 섭정하여 쉰여덟 살에 요임금이 죽자 삼년 후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황하의 남쪽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모든 제후들이 단주를 찾아가지 않고 순에게 왔다. 사람들은 순임금을 천자로 대했던 것이다. 예순에 왕위에 올라 재위 39년 창오에서 죽었다.


무극 7:99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이르나, 그 부친 고수의 오명을 벗기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 하리요?”하시니라.


무극 9:187 또 하문하시기를“네가 내 일을 대신 맡아 보겠느냐?”하시므로 우러러 답하기를“재질이 둔하고 배운 바 없사오니 어찌 능히 감당하오리까?”하니“미유학양자(未有學養子) 이후(以後)에 가자야(嫁者也)니라.

우순(虞舜)이 경우역산(耕于歷山)하고 어우뇌택(漁于雷澤)하며 도우하빈(陶于河濱) 할 때는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알지 못하였으나 당국하매 알았느니라.”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