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l  Site Map l  즐겨찾기  E-Mail
 
 
  신앙의 대상
  취지
  도리
  신조
  훈회
  수칙
  도학원론

 
 

 

훈회란 원래 가르치고 이끌어준다는 뜻이고 이 훈회는 양위상제님의 허다한 훈회 중에서 그 뜻이 모두 집약(集約)되고 함축(含蓄)되어 가장 핵심(核心)이 되는 5개항이므로 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text_01.gif
text_03.gif

text_04.gif

text_05.gif

text_06.gif


 
  이는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림에 관한 가르침이다. 마음은 원래 일신을 주관하기 때문에 사람의 언어행동은 모두 마음의 표현이므로 자신의 마음 다스림을 다른 훈회보다도 첫째 조항으로 세운 것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과 사심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으로서 도리에 맞는 바른 마음, 즉 태극심(太極心)인데 반해서 사심은 사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으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바르지 않은 마음이다. 원래 인성의 본질은 양심이지만 사심에 사로잡히면 양심을 잊고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한다.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양심을 속임, 즉 사심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로되 그 마음이 양심인지 사심인즈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오직 자기 스스로만이 아는 일이므로 마음을 속인다는 것은 곧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되어 수도인의 옥조(玉條)인 무자기(無自欺 : 자신을 속이지 않음)에 위배되는 것이니,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 그대로를 속임없이 하여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는 것이다.
 
 
 
 
  이는 대인관계(對人關係)에서의 첫 단계에 관한 가르침이다. 이 언덕의 뜻을 나누어 생각하면 말과 덕의 두 가지로 볼 수 있으나 말은 남에게 듣게 하는 내 마음의 소리이고 덕은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내 도심의 자취이므로 도인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의 선악은 말에 의하여 남에게 표현되는 것이므로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남이 잘되고 그 남은 덕, 즉 여음(餘蔭)이 밀려서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나에게 이르고, 말을 악하게 하면 해가 되어 남이 망하고 그 남은 해, 즉 여앙(餘殃)이 밀려서 점점 큰 화(禍)가 되어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화와 복이 언제나 언덕(言德)의 있고 없음에 의하여 비롯되는 것이므로 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만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마음이 안정되면 얼굴 빛도 자연히 밝고 맑아지고, 좋은 음식이라도 잘 씹어서 알맞게 먹어야 몸에 이롭듯이 남을 상대함에 있어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어떻게 표현해야 언덕을 가지게 되는가? 에 각별히 삼가하여 모든 말에 언덕이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는 대인관계에서의 다음 단계에 관한 가르침으로서 전항의 언덕은 자기 스스로의 수양적인 사항임에 반하여 척은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나에 대하여 일어나는 남의 원한과 원통함이니 척을 짓는다는 것은 곧 남으로 하여금 나에 대하여 원한을 갖거나 원통을 짓게 만드는 것이므로 남을 상대하는 일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원억(寃抑)을 짓는 것과 남을 미워하거나 남의 호의(好意)를 거슬리는 것은 모두 척을 짓는 행위이니 해원상생을 신조로 하는 도인으로서는 항상 남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양순(溫恭良順)하고 사양하는 도독으로 남을 상대하여 척을 짓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는 물론, 유사이래의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상잔쟁투(相殘爭鬪)의 근원이 이 척에서 연유하고 그것이 신명계와 물질계에까지 연결, 침투되어, 심지어 탄환과 폭약의 정(精)조차 이 원척에 연유한다(무극진경4:28)는 사실로 보아서도 이 척짓는 행위를 엄금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친한 벗의 나쁜 행동이나 배도행위를 보고도 혹시 척이 될까 염려하여 못본 체하거나 충고, 책선(責善)조차 않는다면 이것은 도리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척을 더 짓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도 또한 대인관계에 관한 가르침으로서 전항의 척을 짓는 행위는 남에 대한 나의 잘못임에 반하여 은혜는 남이 나에게 베푸는 혜택이고 저버림은 내가 남으로부터 입은 혜택을 잊거나 소홀히 여겨 배반함이니 이도 또한 척이 될 것이므로 은혜를 입거든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은혜를 갚는 길은 각각 도리를 다하면 된다. 생명과 복록은 상제님께서 주재하시는 천지자연의 대은이니 성·경·신으로써 천지보은의 대업을 이루어 인도(人道)를 다하고, 보명(保命)과 안주(安住)는 국가사회의 대은이니 헌신봉사의 충성으로써 사회 발전과 공동복리를 도모하여 민도(民道)를 다하고, 출생과 양육은 부모의 대은이니 봉선보본(奉先報本)의 대의에 힘써 효도를 다하고, 교도육성(敎導育成)은 사부(師傅)와 형장(兄長)의 대은이니 봉교포덕(奉敎布德)으로써 제도(弟道)를 다하고, 생활과 녹작(祿爵)은 가정과 직업의 대은이니 성실, 근면, 화목으로써 직분(職分)과 본분(本分)을 다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유의할 일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하신 것은 반드시 갚는 데만 그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은혜를 입고도 모른 체 하거나 안 입은 듯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 등은 은혜를 갚기 이전에 반드시 명심불망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이는 대인관계에서의 최종단계에 관한 가르침이다. 남을 얼핏 생각하면 나와는 별개인 듯하나 태극진리에서 생각하면 우주만물이 서로 보완(補完)하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남은 나의 분신이요, 공생체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남을 잘되게 함은 상생대도의 기본범주요 제생의세(濟生醫世)의 근본이념이다.
따라서 이 남이란 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정혼백(靈精魂魄) 등 신명계와 초목금수 등 생물계는 물론, 수토공기 등 무생물계도 모두 이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심지어 자연보호나 환경정화도 역시 종국은 이 남을 잘되게 함의 일환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맹목적인 이타(利他)주의로서 우주간의 주체인 자신까지 버리면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도 무리인 반면, 극단적인 이기(利己)주의나 개인주의도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니 나는 남을 잘되게 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잘되게 하겠는가? 남을 잘되게 한다는 것은 결국 나도 함께 잘되게 하는 것이니 항상 합덕, 조화의 진리와 해원, 상생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남을 잘되게 함에 힘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남을 잘되게 하는 일"이야말로 이상의 4개 훈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동시에 태극도인이 지향하는 도통진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차원에서 핵심적 훈회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