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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 1. 주염계의 태극도설

- 2. 태극도설의 사상적 의미

- 3.태극도에서 바라보는 무극과 태극

- 4. 진리의 본체인 무극, 곧 일원상

- 5. 진리의 움직임, 태극

(1) 태극은 음양오행의 원리

(2) 오행의 상생과 상극

- 6. 결어(태극도는 상생의 대도)

     
 

1. 주염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互爲其根, 分陰分陽兩儀立焉, 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坤道成女, 二氣交感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義, 而主靜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索之凶, 故曰立天地道曰陰與陽, 立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斯其至矣.

<무극,태극>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생하고 동(動)이 극(極)하면 정(靜)하나니, 정하여 음(陰)을 생한다.

<음정양동>정이 극하면 다시 동한다. 한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으로 갈리고 양으로 갈리니 양의(兩儀)가 맞서게 된다.

<오행>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생하니 오기(五氣)가 순차로 펴지어 사시(四時)가 돌아가게 된다. 또 오행은 하나의 음양(陰陽)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극(太極)이요, 태극은 본래 무극(無極)이다. 오행의 생함이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가지니, 무극의 진(眞)과 이오(二五)의 정(精)이 묘합(妙合)하여 응결(凝結)된다.

<건곤남녀>건도(乾道)는 남(男)이 되고 곤도(坤道)는 여(女)가 되어 두 기가 서로 감(感)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한다. 만물이 생하고 생하여 변화는 다함이 없다. <만물화생>오직 사람이 그 수(秀,빼어남)를 얻어 가장 영(靈)하다. 형(形)이 이미 생기니 신(神)이 지(知)를 발(發)하고, 오성(五性)이 감하여 움직이니 선과 악이 갈리면서 만사가 생겨난다. 성인은 이것을 정하되 중정(中正)과 인의(仁義)로써 하고, 정을 주로하여 (무욕함으로 정(靜)한다.) 인극(人極)을 세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합하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그 명(明)이 합하고, 사시와 더불어 그 서(序)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이 합한다. 군자는 이것을 닦으므로 길하고, 소인은 이것을 어기므로 흉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天)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지(地)의 도를 세워 유(柔,부드러움)와 강(剛,굳셈)이라 하고, 인(人)의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 한다.]고 하며, 또 말하기를 [시(始)에 원(原)하고 종(終)에 반(反)하면 사생(死生)의 설을 안다.]고 한 것이니, 위대하도다《역(易)》이여! 이것이 그 지극(至極)이로다.

 
     
 
     
 

2. 태극도설의 사상적 의미

우리나라의 태극기에도 나오는 태극(太極)은 중국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서양인들은 태극을 번역하여 최고의 궁극자(The Supreme Ultimate), 궁극적 원리(Ultimate Principle)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에 바탕을 둔 풀이라 하겠지만, 태극이 지닌 어떤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성격만은 잘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그림이 하나 있다. 물론 태극기는 아니고 태극도(太極圖)라는 그림이다.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주염계(周濂溪 : 1017~1073)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극(無極)은 곧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그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해져 음을 낳으니,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인다. 이렇게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이 서로 그 근원이 되어 음으로 양으로 갈린다. 양이 변하고 음이 그에 화합하여 수, 화, 목, 금, 토의 오기(五氣)를 낳고, 오기가 순조롭게 퍼져 사계절이 운행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여기까지의 설명은 일종의 우주만물의 생성 과정을 담고 있다.

주염계는 뒤이어 "음양의 두 기가 교감하여 만물이 생성되는 중에 사람이 가장 빼어난 기를 받아 생겨남으로써 가장 영묘한 존재가 되었다. 인의예지신의 오성(五性)이 바깥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임으로써 선악이 나누어지고 모든 일이 생겨난다. 성인은 자신을 중정인의(中正仁義)로 조절하고, 욕심이 없기에 고요함을 근본으로 삼아 사람이 행해야 할 도, 즉 인극(人極)을 세운다....."---> 여기에서는 우주자연의 변화원리에 즉한 인간의 윤리도덕관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태극도설}에 나오는 태극은 {역경} 계사전의 '역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는 말에 그 연원이 있다. 그리고 무극은 노자의 {도덕경} 제28장에 나오는 말이다. 또한 중정도 {역경}에 자주 등장하며, {중용}에서 말하는 중화(中和)와 맥락이 닿는다. 요컨대 {태극도설}에는 {역경}, {중용}, 그리고 도가 사상 등 여러 요소가 등장한다. 더구나 주염계는 {태극도설}을 송나라 초의 도사 진단의 '무극도(無極圖)'를 보고 착안하여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극도설}이 지니는 사상적 특징은 역시 우주의 생성변화와 인간의 윤리도덕을 혼연일치시킨다는 점에 있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자연의 세계와 가치 혹은 당위의 세계, 즉 자연과 인륜을 총체적, 종합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셈이다. 이러한 철학전통은 유가, 도가 등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 사유체계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었던 관념이었다. {태극도설}이 후대의 유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주희가 태극을 리(理)와 동일시하면서 {태극도설}을 무척 중시했기 때문이다. 주희는 태극을 개별적인 사물 각각의 리이자, 만물의 보편적인 리로 해석했던 것이다.

한편 무극이 {도덕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때문에 후대의 일부 유학자, 예컨대 육상산 같은 인물은 유학에는 무극이라는 말이 설자리가 없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희는 태극이 공간적인 제약을 지니지 않고 물리적인 형태를 지니지도 않으며 특정의 장소를 차지하는 사물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 주염계가 무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풀이했다. 주염계는 사람들이 태극을 마치 어떤 구체적인 사물로 간주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태극도설}은 그 도가사상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주희의 학문적 노력에 의해 신유학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3. 태극도(太極道)에서 바라보는 무극과 태극

(1) 모종삼(牟宗三) 교수의 무극과 태극 관계에 대한 설명

김용옥 교수의『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1987년판) 272쪽에서 인용한 모종삼 교수의 글을 보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한 마디는 태극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문제에 걸리고 있으며 양자는 원래 하나이다. 무극을 더하여 태극을 형용하여도 무방한 일이다. 태극은 정면(正面)에 대한 언표이며 무극은 부면(負面)에 대한 언표이다. 또한 태극은 도체(道體)의 드러난 말이며 무극은 도체(道體)의 가려진 말이라고 하여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태극은 실체(實體)를 나타내는 명사이며 무극은 형용사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무극과 태극의 관계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으로서 첫째는, 주희가 말하는 것처럼 무극이 진리의 실체인 태극의 무한성을 형용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고 둘째는, 무극과 태극이 도체(道體) 즉 진리의 실체의 양면성(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태극도에서도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관하여 양자의 의미를 함께 사용한다고 볼 수 있는데,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2) 진리의 실체인 태극의 무한성을 형용하는 무극

도주님께서 친히 지으신 태극도 취지서에는 우주의 본연법칙으로서의 태극과 이러한 태극의 무한성을 나타내는 의미로서 무극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있다. 즉 도주님께서 취지서에서 말씀하시기를,

宇宙之爲宇宙(우주지위우주)는 元有本然法則而(원유본연법칙이) 其神秘之妙(기신비지묘)ㅣ 在乎太極(재호태극)이니 外此無極(외차무극) 故(고)로 曰太極(왈태극)이요 唯一無二(유일무이) 故(고)로 曰太極也(왈태극야)ㅣ라. 惟是太極也(유시태극야)는 至理之所以載也(지리지소이재야)ㅣ요 至氣之所由行也(지기지소유행야)ㅣ며 至道之所自出也(지도지소자출야)ㅣ라.

(해설 : 우주의 우주됨은 원래 본연의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의 신비스런 절묘함이 태극에 있으니, 이 밖에는 더 지극함이 없으므로 태극이라 하고 오직 하나 뿐이고 둘이 없으므로 태극이라 이른다. 오직 이 태극이란 것은 지극한 이치가 이로써 실려 있는 바이고, 지극한 기운이 이로 말미암아 운행되는 바이며, 지극한 도(道)가 이로부터 나오는 바이다.)

(3) 체용일여(體用一如)로서의 무극과 태극

도주님(옥황상제님)께서는 구천상제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무극주와 태극주 관계로 표현하시며 또한, 구천상제님의 도수와 도주님의 공부를 무극과 태극 내지는 체와 용의 관계라고 말씀하신다.

태극진경 (제 5장 : 62) 이해 4월 봉천명일 치성 후에 참례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 증산상제님께서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라.' 하시고 또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하셨으므로 상제님의 도호 '증산(甑山)'에 이어 나를 '정산(鼎山)'으로 하셨느니라. 상제님께서는 무극주로서 재천(在天)하시고 나는 태극주로서 재인(在人)하니, 체용(體用)은 둘이 아니요 하나니라." 하시니라.

태극진경 (제 5장 : 63) 이어 "증산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삼계대공사(三界大公事)의 도수는 무극의 체인 바 그것을 풀어 쓰는 것은 태극의 용을 맡은 나의 소임이니, 이 곧 무극시태극(无極是太極)의 원리니라. 무극시태극이므로 무극과 태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극?태극이 일체일용(一體一用) 뿐이니라. 오직 무극은 정(定)이요 태극은 동(動)이니, 무극은 체(體)와 이(理)며, 태극은 용(用)과 기(氣)니라." 하시니라.

태극진경 (제 5장 : 64) "내가 상제님의 도수로 무극대도를 개창(開創)하였으니 이는 체(體)를 밝힘이고, 다시 태극의 도문을 열음은 그 도수를 푸는 용(用)의 기동이니라. 내가 이제부터 그대들에게 설(設)할 모든 법방은 무극주의 체를 태극주로서 용함이니라." 하시니라.

태극진경 (제 9장 : 59) 또 "나의 공부종필의 참뜻을 다시 한번 말하리라. 구천무극주님께서 친히 9년공사로써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그것은 체(體)요, 원리니라. 나는 도로써 용(用)하여 만수도인을 만들어 기르고 무극과 태극의 창도를 함이니, 이 실로 무극의 정(定)에서 생겨난 태극진리의 기동도수니라. 그러므로 나의 공부는 도를 어떻게 믿고 배우고 닦고 행하라는 진법이니 솥이 있어야 시루를 쓰는지라, 이로써 증정지도(甑鼎之道) 증정지덕(甑鼎之德) 증정지교(甑鼎之敎) 증정지학(甑鼎之學) 증정지수(甑鼎之修) 증정지화(甑鼎之化)가 성취됨이니라." 하시니라.

(4) 결 론

우리 태극도에서는 태극의 그 진리로서의 무한성을 표현하는 말로 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태극진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주님께서는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하여 주로 체(體)와 용(用)의 관계 내지는 정(定)과 동(動)의 관계라고 말씀하신다.

무극과 태극을 체(體)와 용(用) 또는 정(定)과 동(動)의 관계로 본다면(주희를 비롯한 신유학자들은 부정하겠지만 주염계가 무극이태극이라는 말을 할 때부터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미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무극(無極)의 의미는 선불교에서 우주만유의 본원 내지 진리의 본체를 형상화한 일원상(一圓相)의 해석과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선불교는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중국토착화한 사상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즉, 선불교는 불교사상과 도가사상이 융합된 것이다).

자, 이제 결론을 한번 지어보도록 하자!

주염계의 ‘無極而太極(무극이 곧 태극이다)'에서 무극과 태극을 체와 용, 정과 동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바로 유, 불, 선의 3교가 융합되어 있는 관념으로서, 이러한 유, 불, 선 3교의 정수(精髓)가 무르녹아 있는 풍류신교(風流神敎)인 우리 태극도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해석이라 할 것이다.

 
     
 
     
 

4. 진리(道)의 본체인 무극(無極), 곧 일원상(一圓相)

둥근 원을 불교에서는 일원상이라고 하는데, 우주만유의 본원 또는 원융무애한 법을 상징한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일원상을 1천7백 공안(화두)의 하나로 삼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일원의 근본을 추구하는 것이 ○자 화두다.

예로부터 선방에서는 일원상을 벽에 그려 놓고 참선정진해 오고 있다. 이는 언어도단(言語刀斷)의 입장처인 일원의 진경에 들어가기 위한 수행방법이다.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보면 중국의 육조 혜능대사가 이르기를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했다. 서산대사는 주해(註解)에서 한 물건을 일원상으로 표시했다. 또 삼조 승찬대사는 일원상을 <신심명(信心銘)>에서 '허공같이 뚜렷하여 모자랄 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다.' 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선가귀감> 역주에서 일원상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마음, 성품, 진리,도라 하여 억지로 이름을 붙였으나 어떤 이름으로도 맞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도 그 참모양을 바로 그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한한 공간에 가득 차서 안과 밖이 없으며, 무궁한 시간에 사뭇 뻗쳐 고금(古今)과 시종(始終)도 없다. 또한 크다, 작다, 많다, 적다, 높다, 낮다 시비할 수 없으며, 거짓 참 등 온갖 차별을 붙일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동그라미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당나라 혜충국사(慧忠國師, ?-775)는 97가지 그림으로 가르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도저히 그 전체를 바로 가르칠 수 없어....." 고 한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고 법정스님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원불교에서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 교조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은 20여 년 간 수행한 뒤 깨달았을 때의 심경을 언어나 문자를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원으로 표시하고, 일원은 곧 우주 만물의 본원이며 모든 부처와 성인의 심인(心印)이고 중생의 본성 자리라고 하였다. 또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는 도와 인과응보의 이치가 서로 융합되어 기틀(相)을 세운다고 하였다.

 
     

     
 

5. 진리(道)의 움직임, 태극(太極)

(1) 태극은 음양오행의 원리

주역에서는 ‘역유태극(易有太極)하여 시생양의(是生兩儀)하고 양의(兩儀)가 생사상(生四象)하고 사상(四象)이 생팔괘(生八卦)'라 하고,

북송(北宋)의 주염계 선생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니 태극(太極)이 생양의(生兩儀)하고 양의(兩儀)가 생사상(生四象)하고 사상(四象)이 생오행(生五行)이라'고 한다.

음양(陰陽)이 만물만상의 상대적이며 이원적인 기본원리라면, 오행(五行)은 그러한 음양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하게 변화해가는 단계와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은 것이다. 즉 5가지의 형상과 단계를 거쳐서 변해간다는 의미가 있다.

비유하자면, 오행은 음양이라는 두 남녀가 서로 어울려서 추는 다섯 마당의 춤사위라고도 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사상(四象)의 네 가지 요소에 이것들을 움직이는 중심력이자 윤활유 역할의 요소를 하나 더 포함시켜 만물의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행인 것이다.

그래서 行(행할 행)자를 넣은 것이며, 行자를 분석해보면 힘겹게 걸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즉, 우주의 변화원리도 결국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게 가고 있다는 뜻을 알려주고 있다.

(2) 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가. 상생(相生)의 원리

상생(相生)이라 함은 서로 생(生)하여 돕는 것을 뜻한다.

목생화(木生火)- 목(木)은 화(火)를 낳고,

화생토(火生土)- 화(火)는 토(土)를 낳고,

토생금(土生金)- 토(土)는 금(金)을 낳고,

금생수(金生水)- 금(金)은 수(水)를 낳고,

수생목(水生木)- 수(水)는 목(木)을 낳는다.

상생(相生)이란 서로 공생(共生)하는 관계로서, 우주전체가 서로 도우며 자율운동을 하는 원리를 말한다.

즉, 나무가 자신을 태워 불을 일으키고 재가되어 흙으로 돌아가면 흙은 응집되어 바위가 되며 단단한 바위틈에서 물이 고여 흐르게 된다. 그리고 물은 다시 목(木)을 생육(生育)함과 같은 것이다.

나. 상극(相剋)의 원리

상극(相剋)이라 함은 서로 극(剋)하여 치는 것을 말한다.

목극토(木剋土)- 목(木)은 토(土)를 극(剋)하고,

토극수(土剋水)- 토(土)는 수(水)를 극(剋)하고,

수극화(水剋火)- 수(水)는 화(火)를 극(剋)하며,

화극금(火剋金)- 화(火)는 금(金)을 극(剋)하며,

금극목(金剋木)- 금(金)은 목(木)을 극(剋)한다.

상극(相剋)이란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는 것으로, 우리의 우주는 상생과 상극의 조화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즉 나무는 흙을 뚫고 나와 자라며, 흙은 물의 흐름을 막고, 물은 불을 끄고, 불은 쇠를 녹이며, 쇠는 다시 목을 자르는 것이다.

다. 상생(相生)에 들어있는 상극(相剋)의 이치

상생(相生)의 관계에서 생(生)하여 주는 것이 지나쳐 오히려 해(害)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배부른 사람에게 계속 밥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수(水)가 목(木)을 생(生)하나 수(水)가 지나치게 많으면 목(木)의 뿌리가 썩고 물 위에 뜨게 되고, 목(木)이 화(火)를 생(生)하여 주나 목(木)이 많고 불씨가 적으면 목(木)이 타지 않고 연기만 나서 불을 끄게 되는 경우이다.

라. 상극(相剋)에 들어있는 상생(相生)의 이치

상생(相生)과는 달리 상극(相剋)은 서로를 치니 나쁘게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적당한 극(剋)은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칼이나 도끼가 나무를 베어내고 칠 수도 있지만, 적당한 가지치기를 해 줄 때에 더 크고 곧게 성장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상극이 곧 상생도 되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6. 결 어(太極道는 相生의 大道이다)

태극의 진리가 음양오행이 상생하고 상극하는 원리라고 할 때, 우리 태극도 수도인(修道人)들이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우주자연의 원리이자 인도(人道)의 규범은 바로 상생(相生)의 원리 내지 조화(調和)의 원리인 것이다.

이는 사람의 본성이 어둠을 등지고 빛을 향하는 것과 같을 것이며, 또한 죽음을 싫어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크고도 무궁하도다, 무극주와 태극주의 이도일체(以道一體)의 가르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