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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절 머리말


제 2절 구천상제

1. 구천상제의 위격
2. 도조 증산의 행장
    1) 인적사항  4) 상제로서의 공사(公事)
    2) 강세전후  5) 포덕과 교화
    3) 유소시기  6) 화천(化天)과 도통(道統)


제 3절 옥황상제

1. 옥황상제의 위격
2. 도주 정산의 행장
    1) 인적사항  6) 무극도 시기
    2) 강세전후  7) 잠룡·회룡·해방
    3) 유소시기  8)태극의 성지 감천
    4) 망명과 봉천명(奉天命)  9) 성훈과 설법(說法)
    5)득도와 봉3천(奉三天)   10) 환어화천(還御化天)


제 4절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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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절 머리말


이 장은  도조론(道祖論)·도주론(道主論)에 해당한다.
모든 종교에는 교조·교주가 있고 종단에 종조, 파단(派團)에 파조(派祖)가 있다.  
그리고 자력교(自力敎)가 아닌 타력교(他力敎)에서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신앙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태극도에서의 도조(道祖)는 구천상제로 불리우는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도주(道主)는 옥황상제로 불리우는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인 바 이 두 분을 또한 절대 신격을 지닌 두 분의 상제(兩位上帝)로
모셔서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색이다.
이 양위상제는 우주의 기본원리인 무극과 태극의 화신(化身)으로서 무극주, 태극주로 받들고 있으니
무극주이신 구천상제의 체(?)와 태극주이신 옥황상제의 용(用)으로 우주의 생성 발전은 물론 형이상,
형이하의 모든 정신적 현실적 사상(事象)이 진전, 운행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제 구천·옥황 양위상제께서 동토(東土) 한국에 강세하셔서 공사하시고 설법하신 그 해장(行狀)과
교훈을 통한 진리 사상을 고구(考究)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의 원리, 인간의 진리를 체득할 것이며 그 광구군생(匡救群生)의 대 이상을 알고 그 도리를 믿고 닦음으로써 이 지구상을 비롯한 3계 전체에 영원한 낙원(樂園) 선경세계가 이룩되게 하려는 것이다. 태극도리에서 신명관(神明觀)은 인즉신(人卽神)이란 관념 위에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구천상제의 중대한 선언이 관건(關鍵)이 되는 것이니 진경에서 살펴본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무7:91)
천 또는 천신(天神), 지 또는 지신(地神)의 권위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더한 것을 가르치신다. 말하자면 인간이 신보다 더 존엄한 위격으로 등장하는 것이 후천시대의 신인관계인 것이다. 천도교에서는 “人乃天”이란 교리를 “侍天主”의 후속 교리로 내세우는 것이 다소의 무리는 있지마는 사실 인간이 곧 신이며 신명과 인간의 연관 교류하는 인신음양(人神陰陽)의 합덕(合德)을 강조하는 태극사상(태 7:28 참조)으로 볼 때 일면 수긍되는 일이다. ‘천지 만물 사이에 사람이 제일 귀하다 〔天地之間 萬物之中 唯人最貴〕’는 유교의 사상이나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홀로 높다 〔天上天下 唯我獨尊〕’는 불교의 사상도 신과 인간의 동등 또는 그 이상 더 높다고 하는 가르침이니 구천상제의 ‘인존(人尊)이 더 크다’는 말씀과 그 경위는 다르지만 모두 상통하는 의취(意趣)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될 일은 인존을 어느 개인 즉 영도자와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니 이것은 인간 전체의 존엄성을 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모든 인간의 신성(神性)여하에 따라 인간은 고급한 신도 되고 저급한 신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 서양 각 종교에서는 아예 절대신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동양적 사고가 아닌 동시에 그다지 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동양의 성선(性善)설과 서양의 원죄(原罪)설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태극도의 양위상제를 신격·인격으로 위격을 봉대(奉戴)하는 것은 원래 양위상제께서는 무극주·태극주로서 그 기동 조화의 주신(主神)이신 동시에 인간을 위하여 후천선경의 도수를 짜시고 법방을 베푸시기 위하여 한때 인간으로 화현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위상제께서 주재(主宰)하시는 무극·태극의 기동조화로써 우주가 생성 발전하는 것이라는 태극도의 신관 내지 우주관은 서양종교의 창조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대 과학이 가르치는 그대로의 움직이는 자연현상이 곧 태극의 기동이다. 이런 까닭으로 인간으로 오셨던 양위상제께서 인격위로나 신격위로 인간과 함께하시는 것이다. 옥황상제께서는 이러한 신인관계를 ‘신인조화’(태 7:28, 29참조) ‘신인의도(神人依導)’(태 7:29참조)라고 가르치셨는 바 그 이론적 맥락은 동일한 것이며 그 상세한 내용을 논하려는 것이 본 장의 목적이다.



제 2절 구천상제

1. 구천상제의 위격(位格)

태극도의 신앙대상이 구천상제·옥황상제의 양위인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서 먼저 구천상제의 위격을 밝혀두고 넘어간다. 먼저 신격위(神格位)로서는 무극주 구천응원 뇌성보화 천존상제(无極主 九天應元 雷聲普化 天尊上帝)이시다. 그저 약칭(略稱)으로 구천상제라고 봉칭(奉稱)하고 있다. 간단한 해석을 가하면 무극주=무극의 주신(主神) 구천응원=구천 높은 곳에서 으뜸에 응하게 하시고 뇌성보화=우뢰소리로 천지인 3계를 진동시켜 널리 조화시키시는 (조화의 근본이 뇌성이라는 뜻이 포함되었음) 천존상제=하늘에서 가장 높으신 상제라는 뜻이다. 또 인세에 강세하셨기 때문에 인격위(人格位)로서는 강성 증산상제(姜聖 甑山上帝)이시다. 강성=강(姜)씨 성을 가지신 성인 증산=재세시에 사용하신 도호(道號)상제=하늘의 제왕, 땅 위의 제왕에게 쓰는 존칭약칭으로 강성상제, 증산상제, 또는 상제라고 봉칭한다. 다시 말하면 무극주 구천상제께서는 인세에서 사람 가운데도 참사람, 성인 가운데도 큰 성인으로서 정신적 제왕이시고 천계에서는 신명들 가운데 가장 높고 거룩하신 천존상제이신 것이다.


2. 도조 증산의 행장(行狀)

증산 도조께서 무극주이시며 구천상제이심은 전항에서 말한 바지만 재세시(在世時)의 행적을 기술하면서 도조 증산(道祖甑山)이라고 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신앙대상인 구천상제로서의 신격위와 함께 인격적 존재로서의 도조로 볼 때 생기는 역사성과 또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끼는 데서 그렇게 한 것이다. 또한 도학(道學)이란 체계적 논술에서는 너무 관념화한 신앙면에 치중하기보다 객관적인 인격면에서 고찰하는 것이 더 정당성을 지닐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1) 인적 사항(人的事項)

강세지: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손바래기)          (全羅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현(全北 井邑郡 德川面 新月里) 본관: 진주 강씨(晋州姜氏) 양친부:강문회(姜文會, 자 興周, 도호 震堂大父) 모: 안동 권씨(安東 權氏), 도호 宣政大母) 명호:휘 일순(一淳), 자 사옥(士玉), 호 증산 강세일:도기 전 38년 신미(辛未=서기 1871년)9월19일(양11월1일) 가계:중시조 병마도원수 以式(42대조)…국자박사 啓庸(22대조)…도승지 利溫(14대조)…좌랑 溥(13대조)…선략장군 世義(12대조 古阜에 낙향)…고조 渭擧…증조 錫章…조부 漢重


2) 강세 전후(降世前後)

증산상제의 강세 전후에는 범인과 다른 신이(神異)한 일들이 있어서 진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모께서 친가에 근친으로 가 계실 때에 하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내려와서 몸을 덮고 천지가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셨는데 이로부터 태기가 있으셔서… 열석달만에 상제를 낳으시니라.(무1:7) 대부(大父)께서 비몽사몽간에 보시니 두 선녀가 내려와서 산모를 간호하였으며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고 서광이 하늘에 뻗쳐서 7일간을 계속하니라.(무1:8) 옥안이 원만 준수하셔서 금산사 미륵불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불표가 있으시고 아랫 입술 속에는 붉은 점…왼 손바닥에는 임(壬)자문, 오른 손바닥에는 무(戊)자문이 있으시니라.(무1:9)
신인, 대성인의 탄생을 전후한 이런 기사(奇事)는 흔히 있는 예사일이다. 그러므로 무극주이신 구천상제께서 인간의 몸으로 인간 세상에 화현하시는데 이 정도의 기사는 그렇게 큰 기사(奇事)에 속하지 않다고 볼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몽사 등을 그냥 봐 넘기기보다는 기사에 따른 의의를 생각할 수 가 있으니 ·태몽에 큰 불덩이가 몸을 덮고 천지가 광명하신 것은 혼미한 세상을 광명하게 구제할 것을 상징한 일이며 ·향기와 서광이 7일간 집안에 가득했던 일도 당연 이상의 당연지사며 ·얼굴이 금산사 미륵불을 닮은 듯 준수하신 일은 미륵불 재림과 연관성을 가지는 일이며 ·양미간에 불표(佛表)가 있어서 범인과 구별되는 일들이 모두가 기사(奇事)로써 그의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3) 유소(幼少)시기

그의 유소시대를 먼저 진경을 통해서 알아본다.
성품이 후유하시며 혜식이 초인하시고 재예가 총명하시므로…(무1:9) 호생의 덕이 많으셔서 나무 심기를 좋아하시고…초목이나…곤충을 해치지 아니하시며 위기에 빠진 생물이 있으면…구하시니라.(무1:10)
이상에서 유시의 모습과 천품의 일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설명을 보태지 않는다. 학문 수업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훈장을 구해서…천자문을 가르치게 하셨는데 하늘 天자와 따 地자를 가르칠 때는 따라 읽으셨으나 검을 玄자와 누르 黃자는 따라 읽지 아니하시… ‘하늘 天자에 하늘의 이치와 따 地자에 땅의 이치를 알았사오니…’(무1:12)

이렇게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높은 지능을 가지셨으니 15세경에는 유교 불교의 경전들과 제자 백가서를 섭렵하여 통효하셨다.


4) 청년시기의 주유(周遊)와 대각

20대 초반에는 가사를 돌보시는 겸 학문에 전념하시다가 27세부터는 견문을 넓히고 세정(世情)을 살피기 위해 8도 강산을 주유하신다. 그 박람강기(博覽降記)와 타심통(他心通)의 혜식에 모든 사람이 신인의 출현이라고 칭송하였다.(무1:40~44참조) 31세때 종전의 경륜과 법술만으로는 세상을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 후 전주 모악산 대원사(母嶽山 大願寺)에서 수도에 전념하신다. 출입문을 잠그게 하시고 문틈조차 밀봉한 후 49일간을 두문(杜門) 수도에만 전념하시다가 드디어 천지의 대도를 깨달으신다. 진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7월 초 5일 자시(子時)에 두우성(斗牛星)이 섬광방전하고 5룡(五龍)이 허풍(噓風)하며 천지가 뒤눕는 가운데… 몸소 3계의 무극주로서 구천상제의 당체이심을 대오자각하시니라. (무1:50)


5) 상제로서의 공사(公事)

무극주 구천상제께서 행하신 많은 공사를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먼저 진경이 보이는 대로 강세하시기 전 천계에서의 경위를 찾아본다.
“원시의 신·성·불·보살이 회합하여 이와 같은 3계의 겁액을 상제 아니면 광구할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내가 이에 서천서역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서 3계를 주시하고 천하를 대순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모악산 금산사…미륵금신에 임하여 30재를 경하면서 최제우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그러나 제우가 능히 유교의 구형을 초월하지 못하고 무극 태극의 진법을 천명…하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8년이 되는 신미년에 내 몸소 인신으로 강세하였노라.”(무2:34) “내가 3계공사를 주재함은 천지신명이 모여 3계를 바로 잡아주기를 호소하므로 내 몸소 강세함이니라.”(무9:76) “나는 3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불사의 선경을 열어 비겁에 빠진 중생을 건지려 하노라.”(무2:5) “이제 혼란하기 짝이 없는 선천 말대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광구하여…”(무2:20) “천지도수를 정리(正理)하고 신도를 조화하여…상생의 도로써 후천 선경을 열리라.”(무2:24)
이렇게 진경에서 구천상제께서 직접 가르치신 대로 상제로서의 권능과 그 권능의 행사로써의 3계공사가 상제의 광구중생의 대 이상이심을 알 수 있다. 그 공사의 규범을 이렇게 규정하신 말씀이 있다. “인사에는 기회가 있고 천리에는 도수가 있으니 무극이 정하고 태극이 동하여 생음양하는 기동에 따라 그 기회를 지으며 도수를 짜는 것이 공사의 규범이라.”(무5:13)
또한 상제의 권능은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물 샐 틈 없이 도수를 짜놓았으니…사람의…체성(?性)을 고쳐 쓴다’(무2:31참조)고도 하셨다. 이 공사는 명부공사, 선경공사, 해원공사, 세운공사, 도운공사, 의통공사, 도통(道通)공사 등 수 많은 종류의 것이 있다. 그 밖에도 자연현상을 마음대로 변경시켰으며 인간의 질병을 다스려 고치시고 신명을 자재로 부리는 등 천지간의 모든 일을 임의로 하셨다.


6) 포덕과 교화

구천상제께서는 오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포덕이나 포교와 같은 행동은 아니 하셨다. 다만 군류 중생을 광제하시는 덕화가 바로 포덕이며 그 훈회가 그대로 교의(敎義)가 되는 것이었다. 어떤 교주들처럼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든지 교단을 꾸미려고 노력함이 없이 그저 서민적 풍모로 농민 또는 천민과도 함께 생활하시면서 심홍(深泓)한 진리를 평이한 일상 용어와 문자로 가르치신 것이 특색이다. 이제 그 교훈들을 몇 가지로 나눠서 진경에서 찾아본다.

·후천시대에 관한 일
“이때는 해원시대라.”(무3:10)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써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써 먹고살리니…” (무3:16) “선천의 모든 도수를 뜯어고쳐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 선경을 건설하리니…”(무5:12) “후천에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무5:52)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무7:91) “이 시대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니…”(무7:96) “이제는 해원시대니 천한 사람에게 도를 먼저 전하여야 하리니…”(무6:29) “이때는 해원시대라… 무명한 사람이 길운을 얻고…”(무3:10) “이때는 해원시대라… 여자의 원을 풀어 정음정양으로 바르게 하려니와….”(무8:214) “장래에는 소중화를 대중화로 뒤집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기게 하리니…”(무8:212)
이와 같이 후천시대의 개벽을 위주로 가르치셨으니 그 후천시대는 해원시대요, 인존시대요, 원시반본의 시대요, 성인시대요, 한국이 대국이 되게 하시는 시대인 것이다.

·심성 도야(陶冶)에 관한 일
“행신과 처사에 언습을 제 본성대로 할 것이요 억지로…점잔과 교식을 내는 것은 삿된 일이니라.”(무3:12) “마음을 깨끗이 해야 복이 이르느니…”(무3:17)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무3:21) “덕은 음덕이 크니라.”(무3:25) “자리를 탐내지 말고 덕 닦기를 힘쓰라.”(무5:35) “일심만 가지면 못될 일이 없느니라.”(무5:39)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무4:57)
이러한 가르침은 도인의 수도와 인간생활의 준칙이 될 것이며 일반인에게도 인생훈의 좌우명이 될 것이다.

사회 윤리에 관한 일
“남의 재화를 탐내지 말고 남과 싸우지 말라.”(무3:20) “도한(백정)과 무격을 천하게 대하지 말라.”(무3:20) “인망을 얻어야 신망(神望)에 오르느니라.”(무3:29) “우리일은 남 잘 되게 하는 공부니라.”(무3:32) “반 숟갈의 밥도 반드시 갚으라.”(무3:43) “고생을 당하여 이기지 못하면 오는 복을 물리침이니라.”(무3:39) “사람이…나를 구타하면 그의 손을 만져 위로하여 줄지니라.”(무4:29) “원수를 풀어 은인 같이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이루느니라.”(무4:30) “큰 죄를 지은 자는 천벌과 신벌을 받고 작은 죄를 지은 자는 인벌과 자벌을 받느니라.”(무4:41) “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끊는 것과 같아서 워낙 죄가 크므로 내가 관여하지 아니하여도 천리(天理)가 갚느니라.”(무4:42) “죄 중에 노름죄가 크니라. 다른 죄는 홀로 짓는 것이로되… 남까지 끌어들여 서로 속이는…”(무4:44) “신보(神報)가 인보(人報)만 같지 못하니라.”(무4:52) “안다는 자는 다 죽으리니 아는 것도 모르는 체 어리석은 자처럼 행동하라.”(무4:55) “글도 않고 일도 않는 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벗어난 자니 쓸 데가 없느니라.”(무4:54)
상제의 허다 많은 교훈을 진경에서까지 다 기록하지 못하는데 여기서의 발췌는 너무 미약한 것이다. 다만 도인, 나아가서는 모든 인간은 자기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대 인간의 연결된 도덕과 윤리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을 다양하게 가르친 것이니 이것이 모두 다 선경세계 건설의 촉진적 방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후천 선경의 대이상(大理想)
 다음 일일이 진경을 소개하지 않지마는 구천상제께서 도수로 짜셔서 펼쳐 놓으신 선경세계의 설계도를 요약해 본다.  상제께서는 다른 교주들처럼 인간이 죽은 후의 저승세계의 청사진을 펼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생전의 선업, 악업으로 천계에서 선신, 악신이 되어 화복을 받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다만 구천상제의 대 이상은 지상 인계의 새 질서 건설을 주축으로 한 3계 전체의 선경화라는 것이 특색이다. 혼란하기 짝이 없는 말대의 천지를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 고치고 ·물샐 틈 없는 도수를 짜서 ·사람의…체성(體性)을 고쳐 ·신도(神道)를 바로 잡고 ·상생(相生)의 도를 펴고 ·조화정부를 세워 ·선경(仙境)을 이룩하고 ·천하가 한 집안이 되고 ·위무(威武)와 형벌이 없고 ·주루보각(珠樓?閣) 36만간을 지어 ·닦은 공덕대로 좋은 자리에 앉히고 ·신명들에게 의식을 공궤 받고 ·모든 백성의 원한과 번뇌가 그치고 ·얼굴에 화기, 언어 동작이 도덕적이고 ·불로 불사, 빈부 차별없이 호의호식하며 ·운거(雲車)로 공중을 날아 다니고 ·과거, 현재, 미래사에 통달하여 ·수·화·풍 3재가 없어지며 ·불 때지 않고 밥을 짓고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농사하며 ·도가(道家)마다 등 하나씩 세워 대낮같이 밝으며 ·기차가 화통없이 수만리를 삽시간에 달리며…(이하 생략) 이 방대한 이상을 수립한 구천상제를 하나의 자연인으로만 생각해도 1세기전 당시의 과학상식으로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천상제 재세시의 천문, 지리, 인사의 많은 기사 이적과 또 병자와 사자를 치유(治癒), 소생시키는 등 허다한 영적(靈蹟)이 있는 것은 다 아는 일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다만 인간생활의 종말 곧 화천(化天)의 경위만을 기술하기로 한다.


7) 화천과 도통(道統)

인간 증산의 일생은 37년 9개월 5일간이고 종교활동은 불과 7년 11개월 19일간(이것을 9년 공사로 표시)이시다. 그러나 이 기간은 짧지 않으니 기독의 2년 몇 개월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이 되는 기간이다. 아무튼 화천은 일반인의 사망과는 유를 달리하는 것이니 천계에서 인신을 입고 탄생하신 것이 강세 화인(化人) 화탄(化誕)이 되는 것처럼 인신을 벗고 천계로 돌아가는 것은 화천(化天) 화귀(化歸) 승하(昇遐)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따져보면 인간의 문자해석일 뿐 신격으로의 상제가 인간으로 탄생했다고 해서 천계를 위시한 3계의 상제위가 궐위(闕位)공석인 것이 아니니 그러기에 신격적인 존재와 인격적 존재로서의 위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종교인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음양의 기운과 수목화토금의 원소가 조합된 육신을 가지고 인세에 현화(現化)하신 것은 무극·태극의 조화 뿐 이고 우주의 처음부터 회말(會末)까지 도(道)로써 3계와 함께 하시고 화육(化育)하시는 것이 무극주 태극주이신 양위상제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도리로서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되는 명제가 있다. 구천·옥황 양위 상제께서 무극주·태극주이신 것은 위에서 논술했지만 이 두 분은 두 분이 아니고 도로써 한 몸〔以道一?〕이시니 무극이 곧 태극인 원래 그대로인 그것이다.  그러나 인신으로서 인세에서 인세의 언어와 문자로 가르치신 무극·태극의 대도(大道)는 그 도의(道義)·도지(道旨)·도법(道法)의 도통(道通)·법통(法統)은 그의 화천과 함께 어떻게 전승(傳承)되도록 하셨는가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구천상제의 화천이란 사적(史的) 사실과 함께 도통, 법통 전승의 성업(聖業)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화천에 관해서는 그 1년 전부터 사세(辭世)를 예고하신다. 그것을 진경에서 발기(拔記)해 보면
“죽는 일은 장차 내게서 보라”(무8:179)/“내가 이제 천하를 도모하러 떠난다”/“내가 이제 몸을 숨기려 한다”/“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두라”/’포교 50년 공부종필’을 써서 태우시고…”9년간 보아온 ‘개벽공사종필’의 확증을…”(무9:172~181) 하시는 등 말씀을 하셔도 당시의 종도들은 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기유(己酉=1909)년 음 6월 24일 사시(巳時)에 청도리 동곡약방에서 화천하신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온갖 사물에 공사로써 도수 조정을 하시던 구천상제께서는 인세에서의 대도(大道)를 이어나가는 일도 또한 예정하셨다. 그것은 무극주와 태극주가 일체인 그대로 인간 증산의 인세에서의 계승자는 인간 정산일 뿐이니 이것을 인간의 문자로써 도통(道統)전승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도의 큰 의의를 가진 사실은 후에 태극진경을 통한 옥황상제의 기록에서 더 명확하게 현실화하지마는 먼저 무극주의 체(?)로서 예시(豫示)하신 것을 진경에서 찾아본다.
“신명을 시켜 진인을 찾아보니 아직 아홉 살 이라…인유기인(人有其人)이니라.”(무3:59) 금산사의 미륵금불과 기대(基臺)를 보시고 “과연 증정일체(甑鼎一體)며 양산도(兩山道)로다.”하시고 화위전녀(化爲全女=姜)와 주초위왕(走肖爲王=趙)을 하교하시니라.(무6:45) 태인 도창현(道昌峴)…“이곳이 군신봉조지국(群臣奉詔之局)이며 상유도창(上有道昌)하고 하유대각(下有大覺)의…”(무6:46) “보은신을 중국에서 조선으로 넘겨 오리니 그 공사는 진주(眞主)가 하리라.”(무8:169) “매씨에게…”이 본소에서 을미생을 기다리라. 나의 도통을 이을 진인이니라.”(무9:15)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주어 보내리라. 법방으로 용하면 되리니 내가 어찌 홀로 맡아 행하리오.”(무9:113) “…올 때가 되었는데…”하시고 “이제 내 일은 다 되었도다. 남아 15세면 호패를 차느니…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무9:153) “한 사람만 있으면 내 일은 성립되느니라.”(무9:178)
이로써 전지전능하신 구천상제께서는 그의 3계공사의 도수 조정으로써 태극주이면서 인신으로 강세하신 옥황상제 곧 후일에 태극도주로서 대도를 현대의 종교 교단으로 일으켜 세우신 정산상제에게 도통이 그대로 전승되게 하신 것이다. 인세의 연세로서야 천명을 받든 것이 15세며 출생년도 을미생 그대로니까 구천상제께서 예시 하셨다기보다 이미 몸소 짜놓으신 도수를 나타내신 것뿐이며 인신의 매씨에게까지 진인으로서 맞이할 것을 하명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증산상제께서 인세에서 9년간에 걸쳐 무수히 시행하신 공사를 이 도통전수의 공사로써 마감하셨다는 것이 그 후 불과 56일 만에 화천하신 사실 하나 만으로써도 충분히 입증되고 이 공사는 결국 화천과 직결되는 전제(前提)라는 막중한 천기(天機)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도의 도의학에서 양위상제께서 도로써 일체이심과, 그 도통 법통이 곧 하나 뿐인 대강령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동시에 이 도통 법통은 양위상제 사이에만 성립 존재하는 것으로써 그 외 상제의 위격이 아닌 누구에게도 계승될 수 없는 것이니 후세에 만일 도통계승과 대두목을 자처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양위상제께 대한 참람(僭濫)이며 반역으로써 이보다 더 큰 죄가 없을 것이다.



제 3절 옥황상제

1.옥황상제의 위격

위에서 구천상제의 위격을 말했지만 양위상제께서 도로써 일체〔以道一?〕가 되시는 도의(道義)와 함께 그 위격의 신성(神性)적 신격위와 또 인성(人性)적 인격위를 파악 회득(會得)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요하다기보다 절대 불가결의 도의인 것이니 진리[道]의 주신이신 양위상제를 명확히 알지 못하면 그것은 마치 가구주(家口主)의 이름도 모르고 남의 집을 찾아가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신격위(神格位)로서는 태극도주라고만 불러도 되는 것이다. 태극주(太極主) 옥황상제(玉皇上帝)이시니 약칭으로 옥황상제 또는 태극도주라고만 불러도 되는 것이다. 태극주란 문자 그대로 태극의 주신(主神)이라는 뜻이니 태극도주란 뜻과 같고, 생존시에는 주인(主人)이시며 환어 후에는 당연히 주신이되신다. 간단히 해석하면 태극주=태극의 주신. 옥황상제=옥경〔천중천(天中天)〕의 황제(최고신의 호칭)이신 상제라는 뜻이다. 인신으로 세상에 현화하신 인격위(人格位)는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태극도주 조성정산상제(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太極道主 趙聖鼎山上帝)이시다.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이 호칭은 호칭이라기보다 구천상제로부터의 도통전승을 사실(史實)대로 기록한 관형사(冠形詞)인 것이니 그 뜻은 무극주이신 구천상제의 그 크신 도덕의 천명을 받들고 신교(新敎)를 받들어 모셨다는 뜻이다. 태극도주=원래는 태극의 주신이시면서 태극도의 도주가 되신다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2중적(二重的)해석이 되나 여기서는 후자에 해당된다. 조성(趙聖)=조씨 성의 대성인. 정산(鼎山)=봉천명 때 구천상제께서 하명하신 도호(道號). 약칭으로 조성상제, 정산상제, 상제 또는 도주라고 하는데 신격위인 옥황상제의 호칭으로 봉칭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끝으로 한 말을 더 붙이면 옥황상제이신 조성정산상제께서는 재세시로서 기준하면 성인 중 대성인이신 동시에 근엄하신 선비시었고 또 사업적으로는 대실업인의 포부와 경륜이 있으셨다. 그러나 그의 신격위는 옥황상제로서 신명계에서 최고위에 계셔서 구천상제와는 도로써 일체이신 도의 신앙대상이시므로 구천상제와 아울러 양위(兩位)상제가 되신다.


2. 도주 정산의 행장

위에서 도조이신 증산 곧 신격위로서 무극주 구천상제를 말하면서 정산 도주 곧 태극주 옥황상제를 겸해서 말하였으므로 중복을 피해가면서 논술하려 한다. 한 가문에 가조 족조와 호주(戶主) 가장이 있고 국가에 국조와 원수(元首)가 있듯이 종교에도 도조, 도주가 있는 일은 상식에 속한다. 예를 들면 불교의 경우 석가모니를 불조(佛祖) 또는 교조(敎祖)로 부르고 또 사바교주라고 한다. 미래에는 당래교주(當來敎主) 미륵이 있어서 구별된다. 국내 종교로는 천도교의 경우 교조는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며 교주는 1세 수운, 2세 해월(海月), 3세 의암(義庵)인데 그 이후는 교령(敎領)이라 부르고 있다. 태극도는 과거 무극도 시대부터 증산도조에 정산도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시적(可視的) 도단의 조직 체계일 뿐 진리로서의 도에는 신격위로서의 양위 상제로 봉대(奉戴)하고 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옥황상제이신 도주 정산의 행장에서도 먼저 인적사항부터 살펴본다.


1) 인적사항(人的事項)

강세지:경상도 칠원현 서면 회문리          (慶尙道 漆原縣 西面 會文里)          현(慶南 咸安郡 漆西面 會山里) 본관:함안 조씨(咸安趙氏) 양친 부:조용모(趙鏞模), 자 순필(舜弼), 도호 복우도장(復宇道丈) 모:여흥민씨(驪興閔氏), 도호 숭덕부인(崇德夫人) 명호:휘 철제(哲濟), 자 정보(定普), 호 정산 강세일:도기 전 14년 을미(乙未=서기 1895년) 음 12월 초 4일(양1896년 1월 19일) 가계:28대조 대장군 원윤 鼎…19대조 공조전서 열(悅)(함안으로 낙향)…17대조 정절공 여(旅)(생육신의 한분)…13대조 호조참판 방(?)…11대조 함익(咸益)…고조 화식(華植)…증조 性義 조부 승정원 주서 영규(瑩奎)


2) 강세 전후

정산상제의 강세 전후에도 범인들과는 다른 신이한 일들이 있었으니 진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복우도장(정산의 부친)과…부인의…꿈에…천상 옥경에서…일위 선관이…내려와서…경배하며…”…진멸지경의 3계를 광구하기 위하여…인신으로 강세하고자 하오니…받아주옵소서”하며 부인의 품에 안기니…이 때 방 안에는 향기가 만당하고 밖에는 서광이 충천하니라.(태1:8) 취당공(정산의 조부)은…같은 시각에 꿈을 꾸시니…하늘이 갈라지며…태양이 자부의 품에 안기니라.(태1:9) 12삭만의 출산에…숭덕부인(정산의 모친)의 산통이 극심…비몽사몽간에…약탕기를 든…선녀가…내려와서…”탄생하시는 옥동자는…진주이심을 전하옵고…”하며 약탕기를 입에 드리우니라.(태1:10) 산실 지붕으로부터 백홍이 충천하여 7일간…다른 곳에는 눈이 쌓였으나 오직 그 지붕에는 일점설도 없느니라.(태1:11) 강세초부터 기골이 장건…기상이 준수…전신에서 후광을 발하시고…천중천정이 광대…일각 월각이 풍륭…봉안에 안광이 찬연…융준 용안 학경 구배시니라.(태1:12)
위의 증산상제의 경우에도 말한 바와 같이 우주 3계의 상제로 받들어 모실 정도의 대성인이 지상에 화현하시는데 이러한 기사(奇事)들 쯤은 따져보면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닌 일이라는 것을 다시 말할 수 있다. 구천상제 상세시의 태몽 등과는 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바 특히 구천상제 때의 불덩이와는 몇 가지 다른 유형의 징조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양친의 몽사에 옥황상제께서 몸소 나타나시는 것이 그것인데 ‘3계를 광구하기 위하여 강세 한다’는 것을 직접 선언하신 것이다. 이 사실은 상제 강세의 목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직설(直說)하신 것에서 무극주와 태극주로서의 성격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한 대를 더 올라간 조부 취당공의 몽사에는 찬란한 태양이 솟아나므로 상징되는데 이것도 구천상제 태몽의 불덩이에 대한 구체적인 용(用)의 성격이 나타난다 할 것이다.


3) 유소(幼少)시기

유소시부터 그의 모습에도 많은 특징이 있으니 기골 장건/기상준수/전신에서 후광/천중 천정 광대/일각 월각 풍륭/봉안의 안광/융준 용안/학경 구배/등에 칠성문/우고(右股) 3적자/좌고 72적자/발바닥 3적자/턱에 용수/수족에 용조(龍爪)/음성 용성(龍聲) 등 범상한 인간이 아닌 신성(神性)의 소유자다운 면모를 갖추심은 전항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다.
강세 후 6개월에 걸음과 말을 익히시고 첫돌에…보고 듣는 일을 잊지 않고…사리를 채문…(태1:14) 옳다고 생각하신 일은…반드시 실행…호생지덕으로 곤충 한 마리 풀 한포기라도 함부로 훼상함이 없으시니라.(태1:15) 대인의 풍도로 심성이 활달 명석…어떤 일에도 침착 조밀하시니라.(태1:16) 이 해(7세)에 홀로 육갑과 월력의 구성법을 고안하시고…(태1:18)
위에 소개한 구절들로서 그야 말로 천종지성(天縱之聖)으로 유소시부터 세인에게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신동이라는 일컬음을 들으시었다. 거기에 다른 가문과 달라서 함칠(咸安 漆西)지방의 3대 명문가(名門家=흔히들 조리안(趙·李·安)이라고  한다)의 첫째인 함안 조씨에 조부 취당공과 복우도장을 위시한 선대 형제분의 애국운동의 영향을 어릴 때부터 받아오신 것이다. 복우도장께서 안빈낙도와 검소존절을 강조하시고 의방(義方)과 요결(要訣)을 취함이 군자의 길이라고 훈도하심을 정산께서는 처세의 좌우명으로 하셨다. 7세 때부터 서숙에 다니는데 엄동에 장거리 도보로 동상에 걸리기도 여러 번 하셨지만 10세 전후에 4서 5경 제자백가서를 모두 섭렵하실 만큼 총명 영특하셨다. 계묘년(1903년) 12월 잠시 오수(午睡)에 한 선관이 나타나서 ‘진인을 알현한다’고 4배를 한 일도 기사(奇事)의 하나다. 상제의 소년기에 조부 취당공은 한일보호조약의 체결로 관직을 사퇴한 후 그 억정으로 토혈까지 한 후에 순국하는 일을 당하셨는데 이 취당공의 유훈을 받은 정산도주의 일생에도 애국 위민의 충정이 없는 때가 없으셨다. 또 부친 복우도장 3형제분은 칠원 도덕골에서 항일운동에 쓸 화약을 제조하다가 왜헌(倭憲)에게 밀고되어 가운(家運)에 대변혁을 맞는다. 하기는 화약 제조시에 그 자금으로 가산을 저당하여 거금(당시로서는 상답(上畓) 수 10만평 상당)을 차용한 것인데 그래도 그때 돈 수천원이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4) 망명(亡命)과 봉천명(奉天命)

이러한 암흑기를 당하여 14세의 도주께서는 어른들에게 간도(間島=만주 남부)지방으로의 망명을 진언하셨다. 여기에 특기할 일은 원체 신기한 태몽으로 얻은 자제이기 때문에 부친 복우도장께서는 정산의 말이라면 유소시부터 믿고 따랐으며 후에는 도에 귀의하여 도주께 존경심으로 대한 것이 마치 불교의 교주 서가모니에게 귀의한 정반왕의 경우와 쌍벽이 된다 할 것이다. 도기 원년 기유(己酉=1909년) 4월28일, 이날은 전 가족 망명의 날이지만 그보다도 인간 정산이 천명을 받든 대각(大覺)으로서 자신이 태극의 진주(眞主)임을 대오(大悟)하시게 되는 종교사적인 날인 것이다. 이 일대(一大) 사실을 진경에서 알아본다.
4월 28일에…대전역 근처의 철도주변에 행행하셔서…”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 15세면 호패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 하리요. 과연 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하시고…(무9:153) 미시(未時)경 대전 부근에 임하셔…홀연히 일광같은 안용에 황금색 용포의 신인 한 분이 현현하셔서 우레 같은 음성으로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노라. 그대는 3계의 진주니…나의 도통을 이어…무극대운의 대공사를 성취하되 내 명교를 받들어 태극의 진법을 용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광구 삼계하리라.”(태1:39) “그대의 호는 정산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이며 이도일체(以道一?)니라.…나는 구천의 천존상제 로라.”…(정산)상제께서는… 이 신인이 바로 진리의 당체이신 구천상제이심을 깨닫는 동시 봉천명의 도열(道悅)속에 몸소 태극  진주임을 대오자각하시고…심서(心誓)하시니라.(태1:39)
이 봉천명(奉天命)의 사실은 무극과 태극 곧 증정지도(甑鼎之道)가 양위상제를 두 기둥으로 해서 확립되는 순간이기에 태극도는 이날을 봉천절(奉天節)로 기념하고, 이 해를 도력 기원(道曆 紀元)의 원년으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극·태극에서 양의(兩儀) 양위(兩位)가 정립되는 지상의 현실계의 새 기원이 되는 원년 원월 원일인 것이다. 도통의 전수(傳授) 전수(傳授)의 성격이 아닌 전지승지(傳之承之)로 표출되는 순간이었다. 이 봉천명의 사실은 망명지인 요령성의 성도(省都) 심양(瀋陽)의 도명(都名)이 이 무렵 봉천(奉天)으로 개명(改名)되었다가 그 후에 다시 심양으로 고쳐진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3계운도(三界運度)의 계합(契合)이라는 것이다.


5) 득도(得道)와 봉삼천(奉三天)

상제의 화인(化人)으로 오신 몸이지만 정산상제께서는 인신이신 자연인 그대로 봉천명이래 평생 도수 공부에 열중하셨으니 그 햇수가 50년이다. 망명지인 만주에서도 요령성(遼寧省) 수둔구(水屯溝 :현재는 글자의 뜻대로 수풍댐에 수몰(水沒)되었다 함)에 있는 노고산(老姑山)에서 공부를 계속하셨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 중국 본토를 주유(周遊)하시며 공부하시니 이것이 바로 황극신도수(皇極神度數 무8:169참조)와 대중화보은도수(大中華報恩度數 무8:212참조)에 따른 도수 공부였다. 이 중국 본터 공부에는 인세의 부친이신 복우도장의 애국운동을 중국보황당(保皇黨)의 일원으로 오인한 원세개(袁世凱) 정부에서 구속 신문하는 일이 있었던 바 정산상제께서 진정서를 제출하여 무사 석방하게 하신 인자(人子)로서의 지극한 효성의 배경적 연관이 되는 것도 하나의 신인조화(神人調和)적 도수였다.(태1:41~55참조) 중국서의 공부 중에 자신이 그 해원을 자처하신 초패왕(태7:90참조)의 고향 회계(會稽)에서 정사(丁巳)년 원조(元朝)를 맞아 구천상제의 계시를 받드시니 이것이 도통 전승과 함께 득도(得道)의 요긴한 도수다. 그 명교의 내용을 진경에 의해 살펴본다.
“이제 나의 도수에 따른 그대의 대중화보은공사가 끝났으니 본가로 돌아가서 다시 나의 명교에 따라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도통의 연맥과 인계의 인연을 다지도록 하라. 이 곧 득도니라.”(태2:1) “또 이 글은 구세제민할 주(呪)니 잘 기억하라.”(태2:2) ※ 기도주=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태을주=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아
이 후에 윤 2월 초 6일에 다시 계시를 받드시고 초 10일에 득도치성을 올리신다. 이로써 성업(聖業)의 도통(道通)과 함께 의궤(儀軌)의 득도를 병행함으로써 해서 음양합덕, 신인조화의 태극진리를 몸소 봉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천의 현현 계시가 다음과 같이 있었다.
이튿날 축시 기도시에…“그대가 이제 득도 하므로 써 인계에서의 나의 도통을 다졌으니 혼감 하도다.”(태2:5)
이 후에 역시 구천의 계시로 대중화도수공부 9년 만에 환국하셔서 서울, 밀양, 창원 등을 거쳐 칠원 고택(古宅)에 들르신 다음 구천상제의 계시에 따라 본소(本所)를 찾아 나서신다. 그 사이에 안면도(安眠島)와 황새마을 등지에서 포덕으로 많은 도인을 얻은 위에 갖은 신고 끝에 본소를 찾으시게 되니 이 또한 구천상제께서 일찍 매씨인 선돌부인(후일 도중에서 선덕부인(宣德夫人)으로 추존(追尊)하여 봉사(奉祀)하고 있다)을 시켜 비전(秘傳)하신 본소였다. 그리고 부인께 직접 ‘후천진인 을미생을 즐겁게 맞으라’(무9:15, 태2:41~44참조)하시는 명을 내린 결과였다. 여기서 10년 전 구천상제께서 벽 속에 비장하신 천서(天書=현무경과 주문서)를 찾아 받들고 그 오의(奧義)를 체인(體認)하신다. 그 후 다시 둔궤(遁櫃)를 찾아 얻으시니 이것이 곧 천보(天寶)다. 이 둔궤는 구천상제께서 재세시에 도수(무8:19~22참조)를 보시고 손수 자물쇠로 잠그신 것이며 정산상제께서 이 둔궤를 반구정(伴鷗亭)에 모시고 백일간의 둔궤도수 공부를 마치신 후 열쇠를 만들어 열어도 열리지 않던 자물쇠가 주(籌)대를 넣는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스스로 열린 기적이 일어나니 이날이 경신(庚申=1920)년 양력 4월 초 5일이었다.(태2:81~85 참조) 1 봉천명, 2 봉천서, 3 봉천보의 이 3천이야 말로 구천상제의 도통(道通)의 표징인 것으로써 과연 구천·옥황 양위상제가 진리의 혈맥으로 이어지는 도맥(道脈) 도통(道通)의 완전 전승(傳承)이며 양위께서 완전 일체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천명은 심령(心靈)으로, 천서는 지(智)와 혜(慧)로, 천보는 물상(物象)으로 천·인·지(天人地) 3계, 3극으로 이도일체(以道一?)의 비의(秘義)를 드러내신다. 이로써 무극주 구천상제의 태극주 옥황상제께서 도로써 마음으로써 또 현실로써 물적 표상으로써 그 도맥, 도통, 법통의 전승을 명백히 표상하고 있으니 양위상제는 원래 진리로써 한 몸이시기 때문이다.


6) 무극도 시기

도기 13(1921)년 신유(辛酉) 4월 28일 도명(道名)을 무극도(无極道)로 해서 구천상제께서 도조(道組)이심과 친히 도주(道主)이심을 선포하시고 신자를 도인(道人)으로 호칭하기로 하시니 이것이 곧 도단(道團)의 창립(創立)이다. 도의 개창을 선명(宣明)하게 하신 후 3년이 되어 도인의 수가 십 수만이 되었으므로 항구(恒久)한 도장이 있어야 되게 되었다. 도인들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도장영건에 임하였다. 정읍(井邑)군 태인(泰仁) 태흥리(泰興里) 도창현(道昌峴)에 개설한 이 당시의 본부 도장은 5천여 평의 부지에 영대(靈臺), 도솔궁, 그밖의 부속건물과 함께 19동 240간 이었다. 오늘에 이 도장이 남아있었다고 하면 그 후면에 나타난 치마바위의 신묘함과 함께 건축문화재로서도 가치가 있는 웅대 절묘한 건축물이었다. 그 후 대도의 신조·강령·요체를 설정하시며, 조직 체계를 정비, 임원을 임명하셨다. 또한 취지서·도규·각도문·포유문 등을 반포하시고 치성과 기도·수도의 절차 등을 제정하셨다. 새로운 기운(機運)에 즈음하여 도인들도 성·경·신으로 포덕과 수도에 힘을 쓰니 도인의 수가 10만을 넘었다. 그런데 이 무극도의 종교 단체로서의 개창은 그 사적(史的)의의가 크지마는 또 증산계 전 교단 내지는 민족 종교 전체에 커다란 명제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현재까지도 통일되지 않은 무극주 증산 상제의 위격(位格)을 신도(神道)와 인도(人道)로 정확하게 봉대(奉戴)하신 사실이다. 지금도 그저 인간의 훌륭한 성인으로 아는 대성(大聖)이란 호칭을 쓰는 이도 있고 또 일반적인 선생이라고 하기도 하고 강성상제(姜聖上帝) 무성상제(戊聖上帝) 증산상제(甑山上帝) 미륵존불(彌勒尊佛) 옥황상제(玉皇上帝)등 자기 생각대로 봉대(奉戴)하고 있는 등 호칭에서부터 혼란이 막심하다. 옥황상제 도주께서는 봉천명 때부터 또 많은 계시를 통해서 신격위로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 인격위로는 ‘강성증산상제(姜聖甑山上帝)’로 봉대하여 영위를 봉안하셨으니 진정 증정지간(甑鼎之間)의 이도일체(以道一?)적 존재가 아니시고는 인위적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도중 사업이 일취월장한 가운데도 특기할 일은 진업단(進業團)을 조직하여 개간, 수리, 간척사업 등을 일으켜 도단과 도가의 경제기반을 확고하게 하신 일이다.  또 그 단원들을 1개단 200명은 북만주로, 300명 1개단은 함경도 무산으로 파견하여 산림벌채 등에 종사케 하셨다. 뿐만 아니라, 안면도와 원산도에 간석지를 개척하여 많은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충북 음성의 무극광산(無極鑛山) 등 72개 광구를 출원 등록한 후 몇 개 광산에서 금, 은 등 많은 채광실적을 올리기도 하셨다. 이런 산업관계 하나만 보아도 도주께서는 단순히 인격위로서도 경세가(經世家) 또는 사업가적 소질이 풍부하셨으며 본부 건물의 설계 시공, 단청 등도 몸소 지휘하신 해박한 경륜과 지식의 소유자이셨다.


7) 잠룡(潛龍)·회룡(廻龍)·해방(解放)

도기 27(1935=乙亥)년 섣달그믐에 무극도의  해산과 잠룡도수를 선포하시고 다음날인 정월 초하루 새벽에 잠어(潛御)하셨다. 그것은 왜정 총독부의 종교단체해산령 때문 이었는바 그 후 도장부지 건문과 재산 일체가 몰수당하여 경매 처분되었다. 이 사건에 앞서 전북 도지사가 직접 찾아와서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협력할 것을 요청했으나 민족적 정기와 종교적 신념으로 강력히 거부하신 사실이 있었음을 진경은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구천상제께 계시로 하신 말씀 그대로 천기요 도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천기니 지각으로 도난을 감내하고 오직 대도성취의 회룡운(廻龍運)을 기다리라.”(태40:11)
아무튼 도단 해산을 전후하면서부터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도주께서는 그 잠룡의 기간에도 회문도장 회룡재(廻龍齋)에 은거하시며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금하시고 수도공부에 조금도 해이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도단은 이로써 명맥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역경(易經)에서 일음 일양(一陰一陽)이 도라고 한 그 도가 무극의 정에서 일음 일양의 태극 기동으로 잠룡에서 회룡(廻龍)하는 기운(機運)이 따르고 있었다.  이 실로 무극주 구천상제의 도수 조정에 의한 회룡의 운이 바로 이 시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잠룡도수에서 회룡도수, 그리고 해방도수까지 이 10년간에 걸친 신고와 간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마는 시유기시(時有其時)라는 신념 아래 오직 회룡재 공부실에서 도수공부를 계속하셨다. 그 가운데도 회룡기의 창생 해박(解縛)을 위한 해방도수 공부에는 혹한으로 법수(法水)의 얼음이 솟아올라 수염의 고드름과 연결될 정도의 신고를 겪기까지 하셨다. 경진(庚辰=1940)년 가을부터는 각처 도인과 지방 인원들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하셔서 미리 해방도수와 함께 도의 재건 비약을 위한 현룡(見龍) 비룡(飛龍)도수에 대비하셨다. 을유(乙酉=1945)년 음 7월 초 3일 곧 조국해방의 5일 전에 임원들 앞에서 태극도상(太極圖像)의 도기(道旗=후일 대한민국의 국기로 정식 제정된다)를 손수 그려 회룡재 후정에 세우고 공부하시다가 사흘째 되는 날(곧 해방 전일이다)아침에는 동구 밖에 세우게 하셨는데 다음날 낮에 해방이 되었다.  이때 도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잠룡, 회룡의 도수를 거쳐 진주를 잡아 태극도주가 되었음을 고(誥)하노라.”(태4:49) “내가 도수에 따라 허 공부 끝에 잠룡과 회룡을 거쳐 최종 백일공부로써 3계의 해방도수를 보아 태을문을 여는 대공사를 이룸 이니라…그대들은…태극의 도리를 사방사유(四方四維)에 선양하라.”(태4:50)
이로써 해방도수는 한국 한 나라의 해방 뿐 만 아니고 세계 인류 전체 나아가서는 3계 전체의 해방도수, 태을문을 여는 태극주 상제로서의 대공사이셨음을 알 수 있다.


8) 태극의 성지(聖地) 감천

도기 40(1948=戊子)년 원조에 그동안 공개를 금하셨던 태극도의 도명을 만천하에 공포하게 하시고 주문과 공용문서에 자신이 태극도주인 것을 밝히셨으니 무극도에서 태극도로 완전히 중창(重創)하신 것이다. 처음에 도장을 회문도장에서 보수동(寶水洞)으로 옮기셨는데 그 후 만 2년이 지난 다음에는 태극도를 용공단체라 모함하는 자들의 참소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도난(道難)을 겪으셨으며 그해에 6.25사변이라는 민족적 대동난을 당하게 되셨다. 그리하여 각처의 도인들이 도를 의지처로 피난도 오고 또 자의로 도장 가까이 이사해 와서 이렇게 집결된 도가가 천5백 여 호의 판자촌이 되었다. 도기 47(1955=乙未)년에 정부의 시책으로 도인들의 판자집을 철거하고 감천동으로 집단 이주케 됐는데 이것이 구천 상제의 도수에 의한 천장길방(天藏吉方)인 줄을 일반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현무경에 나와 있는 신명부(神明符)가 바로 오늘의 태극성지(太極聖地)인 감천 도인촌의 청사진인 것으로도 입증된다. 감천이 성지라는 사실은 진경에 무수히 수록되어 있으나 다음 두 구절에 요약된다 할 것이다.
“占千古堅秘之靈境…是洞天之眞境” (태8:21 수천년 전부터 굳게 감추었던 신령스러운 지경이라…이곳이 신선이 사는 동네인 진경이다.) “山盡水廻處 始覺有大道”(테7:66 산이 다하고 물이 도는 곳에 비로소 대도가 있음을 깨달았다.) 도기 48(‘56=丙子)년에 도장을 감천으로 옮기신 다음 태극도의 취지·기원·신조·강령·요체·도인수칙을 총 수록한’태극도 통감’을 출판하셨는데 이것은 가이 국가의 ‘헌장(憲章)’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기 49(‘57=丁丙)년에 대강전(大降殿)을 감천 5감에 영건하여 그 영대(靈臺)에 15신위를 봉안하셔서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설정(設定)하시고 개문납객(開門納客)에 진시3천지반(盡是三千之班) 도수를 보신 다음 도단의 조직체계와 기도, 치성, 수도 등 도의 의전(儀典)을 정비하시니 도세(道勢)는 욱일승천의 기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9) 성훈(聖訓)과 설법(說法)

사실 옥황상제 도주께서는 재세기간의 교화, 사업, 교훈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진경에 수록된 기록이 수집된 자료의 10분의 1밖에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 몇 가지 성훈 법언을 발췌하여 보지마는 실로 글자 그대로인 편린(片鱗)에 불과한 것이다.
·후천세계에 관한 일
“후천진인 을미생에게 나의 도통(道通)을 전하라.”(태2:41) “나의 공사를 성취시킬 진법의 진주니…”(태2:46)
이것은 구천상제께서 매씨인 선돌부인께 계시하신 말씀이지만 이로써 옥황상제께서 후천세계의 진주이시라는 확증이 된다. 다음은 옥황상제의 성훈이다.
“후천세계는 이미 구천상제님께서…짜 놓으신 도수의 정(定)을 동(動)으로 작용시켜 지금도 당진(當進)하고 있되 그 천기는 언제 어느 날이란 것을 말할 수 없느니라. 숫자나 날짜 맞추기에 손가락을 꼽지 말라. 인위조작이 되어 혹세의 근본이 되기 쉬우니라…다만, 천기에도 성사는 재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태9:3) “5만년 후천선경을 완성할…구천의 도수와 나의 법방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음을 각골 명심할지어다.”(태5:65) “천지만물이…생하기만 하는 후천세계의 상생(相生)은 이미 열렸느니라…상생상합의 무극대운이 후천선경의 도수니라.”(태7:36)

·수도 수양에 관한 일
“몸은 마음의 표현이라…모든 것이 독음독양(獨陰獨陽)으로는 이룰 수 없음이니라. 마음과 몸, 이상과 현실은…둘이 아니니 무극이 곧 태극임을 아는 자는 이 음양합덕의 진리가 눈에 보이듯 알아지리라.”(태7:38) “심령신대를 수양하되 신체발부를 법례에 맞게 하고 이상생활을 하되 현실에도 충실하여야 하리니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도인이 아니니라…음양합덕은 심신합덕에 있고 신인조화는 심신조화에 있느니라.”(태7:38) “욕심을 내면 제왕도 유부족이오, 안심하면 단간 판옥(판자집)도 만족이니라.”(7:44) “안심 안신으로 경천수도하여 도인의 본분에 어긋남이 없게 하라.”(태4:51) “오직 위아(爲我)의 수도와 위타(爲他)의 교화에 힘쓰라.”(태4:56) “도를 보지 못하여도 태극의 진리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신앙, 수도의 영험이 당장에 없다고 버릴 수 없음이 어불리수(魚不離水)와 같으니라.”(태4:74) “진정한 기도는 성·경·신을 다한 수도와 치성이니라.”(태5:27) “신명계에서도 수도 공부는 계속하여야 하느니 수도한 신명은 향상하되…”(태5:53) “일심으로 수도하라. 일심은 곧 정심(正心)이니라.”(태5:66) “공부 수도 또한 그러하니…욕심에는 욕통이오 도심이라야 도통이니라.”(태6:15) “수도는 3망(三忘)이라야 성공하리니 망기친(忘其親), 망기신(忘其身), 망기가(忘其家)하여야 하며 또 망망(忘忘)까지 하여야…돈오법(頓悟法)으로 열어주리라.”(태7:105) “수도의 기본은 안심, 안신, 경천이고…”(태7:109) “수도 없는 도통이 없고 진법 없는 법방이 없으며 법방 없는 수도도 없으니…”(태8:108) “수도공부에는…무아, 무심, 무욕, 무착으로 하여야…”(태8:113) “수도는 문자와 학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마음을 비우는 데는 무학자가 오히려 나을 수 있느니라.”(태9:13) “내가 명한 수도 법방은…도인의 규구(規矩)라 수신, 수도, 도통, 영통이 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느니라.”(태9:62)
이상으로써 옥황상제의 성훈이 얼마나 절실하게 수신, 수도에 꼭 적합한 것이며 또 절대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설법(說法)에 관한 일에서 보면 대중구제의 집단수도 집단도통의 오묘한 법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설법(說法)에 관한 일
여기에 설법(說法)이란 말은 법방(法方)을 설시(說施) 즉 도단을 창설한다는 말로서의 설법임을 미리 말해 둔다.  다만 구천상제께서는 도수공사를 위주 하셨기 때문에 이 설법은 옥황상제의 공사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먼저 무극진경에서 구천상제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듣는다.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주어 보내리라. 법방으로 용하면 되리니…도통시킬 때에는 유·불·선 각 도통신들이 그 닦은 근기를 따라 통하게 하리라.”(무9:113)
다음은 옥황상제께서 가르치시고 베푸신 법방을 태극진경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惟我奉敎諸子…以承大德하고 以光大道하며 以弘大業으로 崇信大巡遺意하야 以爲依歸之地也일새 此吾太極道之所由設也ㅣ니라.”(태7:26) “새 서울은 구천상제님의 도수에 따라 내가 공부하여 설법하는 통일신단, 조화정부에서 3계를 광구할 태극기동의 원점이니라.”(태5:43) “무극주 상제의 도수를 풀어 설법함이니…내가 베푸는 법방만이 만인간에게 안심 안신을 주어 광구하리니…”(태7:33) “대강을 대강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찾거나 도통을 내가 설법한 진법공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얻으려 한다면…배신, 배도자가 됨이니…”(태9:18) “무극대도의 진체(眞體)를 체득하고 태극진리를 진용(眞用)으로 설법하여…군생을 광구하려 함이니라.”(태9:54)
이렇게 태극도를 창설하신 이유와 이 설법의 중대성을 누누이 말씀하시는데 이제 그 법방의 내용을 간추려 본다. 이 수도 공부의 설법 곧 그 법방은 참으로 묘법(妙法) 모용(妙用)이다. 공부는 시학(侍學)과 시법(侍法)으로 나누어 반(班)을 편성하는데 시학공부반에는 책임자 1인, 부책 2인, 정급 2인, 진급 3인, 회원 16인, 내수(內修=여성수도인) 12인, 외수(外修=남성수도인) 12인, 총원 48인(후일 36인으로 정식 편성, 책임자 1인 정급 2인 진급 3인 회원 6인 내수 12인 외수 12인)이다. 이렇게 15개반을 1개호로 조직했으니 총원은 720인(후일에는 540인)이 된다. 이 반원들이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지정된 공부실에서 주송을 하고 기도를 올리며 부정을 기한다. 거기에 행진 경배 등 각종 예절이 첨가되어 있으니 대단한 고행이 된다. 이렇게 시학공부를 마친 도인들에게 5일(180인)에 초강식, 15일(540인)에 합강식, 45일(1620인)에 봉강식을 봉행하게 하시니 그 경관이 정말 장관이었다. 또 시법공부를 그 반편성은 3인 1조의 12조, 36인이 1반이 되어 공부하게 하셨다. 그 상세한 내용은 진경에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 소개로 끝낸다. 그런데 이 시학, 시법공부는 현재까지도 연속 봉행하고 있으며 초강·합강·봉강식 또한 지금껏, 아니 대강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수도공부의 큰 의의는 옥황상제께서 개인 수도나 그 결과적인 도통에 목적을 두신 것만이 아니고 대중 전체의 도통을 통한 구제의식의 발로인 것이니 세계 인류 전체 나아가서 3계 전체의 구제를 위한 설법의 법방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생활에 관한 일
심서의 도야를 위한 정신 개발의 성훈이 많지만 독특한 현실생활에 대한 법언들만 소개한다. 그것은 타종교가 너무 관념적인 정신생활에 치우쳐 현실생활을 소홀히 하는 혐(嫌)이 있는데 반해 옥황상제의 교훈은 심신즉일(心身卽一)의 견지에서 먼저 육체와 현실에 대해서 깨우치시는 것이 특색이기 때문이다.
“육체현실과 심령이상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육체만을 위주하여 심령을 버리거나 이상만 앞세워 현실을 외면함도 음양합덕이 아니니…”(태5:114) “도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농사에도 장사에도 있느니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심적 기도와 아울러 도를 함께 닦아야 함이 합덕이니라.”(태5:114) “부모와 처자를 봉솔하는 생업에 충실함은 그것이 바로 생의 도리이며 직업의 신성성이니라.”(태5:113)
도의 요체(要諦)에 안심, 안신이 있는 만큼 몸과 마음, 이상과 현실을 분리시키지 않는, 곧 모든 생활의 범주를 진리의 근본인 태극으로 귀일시키는데 성훈의 큰 뜻이 있다고 할 것이다. 또 사회적인 윤리 도덕면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음양이 조화한 합덕으로 개인이 생활하고 사회가 유지되면…너와 나가 화하고 부와 자가 화하고 형과 제가…화하면 인륜이 되고…”(태5:58) “정부와 국민이 화하고 자산가와 근로자가 화하고 지주와 작인이 화와 합으로 생활하는 것이 바로 윤리 도덕의 사회니라.”(태5:58)”신체에 음양이 부조하면 질병이 침범할 것이오, 가정에 부부가 부조하면 가망(家亡)하고, 국가 사회에 상하 사린(四隣)이 부조하면 변란이 생기며 우주에 음양이 부조하면 천재 지변이 생기느니라.”(태7:41)
그리고 여성에 대한 특별한 말씀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은 여권신장이라는 지엽적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태극원리의 본질적인 것이다. “인류를 위시한 만유군생의 모태가 음이며 여성이니 생명의 바탕이 실로 정음의 자리니라. 무극이 태극으로 기동함에 선음(先陰) 후양으로 합덕함을 알면 천하만사가 먼저 여성의 덕에 기인함도 알리라.”(태5:116)


10) 환어(還圄) 화천(化天)

인세에 화현하셨던 옥황상제, 하나의 자연인으로서의 정산은 감천도장 회룡재 산회당에서 64세를 일기로 인세를 떠나시게 된다. 구천상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이 사실은 인계에서 천계로의 환어(還御)이실 뿐이다. 화천하신 일시는 도력기원 50년 무술(戊戌=1958년) 음 3월 초 6일(양 4월 24일) 을미(乙未)시니 을미년에 오셔서 을미시에 환어하신 것도 도수에 의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화천의 의의를 옥황상제께서 친히 하신 말씀에서 살피기로 한다.
(환천 전일의 말씀) “이제부터 의약을 전연 쓰지 말라. 나의 갈 길은…오직 구천상제께서 짜놓으신 여아동거(與我同居=무7:70참조)의 도수니라…일찍이 명교를 받든 대로 공부를 종필하고 천계에 올라 구천상제를 뵈오리니 상제님과 나는 도로써 일체임이니라.”(태9:64) “50년 공부종필이며 지기금지 4월래(至氣今至四月來)…나는 가노니…나의 법방과 사업을 푼각도 어김없이 잘 행하여…다시 만나자.”(태9:70)
도수에 따른 50년 공부를 끝마치시고 본궁으로 환궁 환어하신 것이니 화천은 곧 ‘공부종필’을 뜻하는 것이며 인신으로서는 후천의 대성인이시고 신격위로서는 태극주 옥황상제의 인계 고별(告別)의 고명(顧命)이셨다.
청전백일에 뇌성벽력이 대작하고 정사와 대강전으로부터 5색 광채가 충천하니라.(태9:75) 시내에 있던 감천 도인들은 이 방광(放光)을 화재로 알고…부산 소방서에서는 소방차 2대를…긴급 출동 시키니라.(태9:75)
이런 기사(奇事)는 당시의 도인들 다수의 증언으로도 알 수 있다. 끝으로 옥황상제의 이적(異蹟) 기사(奇事)가 허다하지마는 구천상제의 기록에서와 함께 학(學)의 이름으로 엮어나가는 본서에서는 굳이 생략한 것이 자못 송구스러울 뿐이다.



제 4절 맺는말


이상으로 구천·옥황 양위상제의 행장을 소략한 대로 발기해 보았다. 그러면 양위상제께서 어쩌면 이 아시아 동 반도에 강세 출현 하셨는가 그 의의를 규명해 보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간단히 진경에 의해 추출(抽出)해 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혼란한 선천에 후천세계를 여시어 ·구천상제 무극의 체와 옥황상제 태극의 용으로 3계를 광구하시고 ·군생에게 음양합덕과 신인조화로써 해원상생의 길을 열어 주시며 ·도통진경의 5만년 선경세계를 이룩하여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려는 대 이상이셨다.